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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인문학 산책--나에게 영어는 숙명

리첫 2013. 12. 4. 09:23

 

나에게 영어는 숙명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 유년을 보낸 곳이 이른바 미군부대가 있는 동네였다는 것도 그렇고, 대학에 들어가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모두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꼬맹이 시절 나는 AFKN에서 방영했던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았고, 맥도널드와 KFC가 있는 풍경에 익숙했다. 물론 나중에 나는 이런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여하튼 나에게 영어는 처음부터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 삶을 비집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대학을 영문학과로 진학하기 했지만, 대다수 대학생들처럼 나 역시 ‘영문도 모른 채’, 그나마 영어가 제일 익숙했기 때문에 영문학을 전공했을 뿐이다.

 

영어가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내 인생을 결정했다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처지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내가 한국이라는 곳에 태어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영어가 나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영어를 잘해야 취업에 용이한 ‘국가’에서 살았기에 나는 영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의 말처럼, 자기의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출처:영단어 인문학 산책(이택광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