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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傳(식전)--그들이 옥수수 껍질을 벗긴 방법

리첫 2016. 8. 4. 13:06

食傳(식전)--그들이 옥수수 껍질을 벗긴 방법

 

특히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는 구대륙의 식량부족을 메웠으며 구대륙의 기근해소와 인구증가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옥수수와 감자는 짧은 생육기간과 폭넓은 적응력 때문에,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 구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구황식물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이제 이 둘은 단순한 구황식물을 넘어 전 세계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귀중한 작물이다.

 

모든 곡식이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옥수수야말로 사람의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한 작물이다. 곡식의 낱알은 번식을 위해 다 여문 씨앗이 저절로 떨어지는 게 보통이다. 낱알이 떨어지는 곡식은 인간이 곡식을 거두려면 노동의 효율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낱알이 잘 떨어지지 않는 종자만 골라 심어 지금과 같은 밀과 보리, 쌀처럼 다 익어도 이삭에 그대로 붙어 있는 곡식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옥수수는 더욱 특이하다. 알갱이가 다 익어도 떨어지기는커녕 몇 겹의 껍질이 씨앗을 보호한다. 사람의 손길이 없으면 자연 상태로는 절대로 번식하지 못할 정도가 된 것이다. 원시 옥수수의 경우에는 낱알이 몇 되지도 않았지만 다 익으면 저절로 씨앗이 멀리 튀었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공이었던 원주민들의 놀라운 육종기술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하지만 옥수수에는 치명적인 결함 두 가지가 있었다. 옥수수의 첫 번째 결함은 단단한 껍질이었다. 지금도 옥수수 튀밥은 단단한 껍질이 달라붙어 있기에 목에 걸리는 경우가 생긴다. 요즘은 말린 옥수수를 제분기에서 거피하는 기술이 생겼지만, 과거에 주식으로 삼기에는 이 단단한 껍질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닐 수 없었다.

 

또 옥수수에는 니코틴산이라는 필수아미노산 성분이 다른 곡물에 비해 적은 것도 또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할 경우 펠라그라병과 같은 필수영양소의 부족으로 인한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는 옥수수가 가축 사료 이외의 용도를 넘어서기 어려웠고 주곡의 보조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던 중남미 사람들은 이런 영양결핍을 겪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옥수수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기에 ‘껍질 벗기기’와 같은 혁신적인 가공법으로 단점을 뛰어넘었다. ‘껍질 벗기기’란 옥수수 알갱이를 석회, 달팽이 껍데기, 숯 등과 함께 삶고 하루가 지나 성가신 껍질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성가신 껍질을 제거해 가공하기 쉬워질뿐더러 달팽이 껍데기에 있는 탄산칼슘의 화학작용으로 필수아미노산의 부족도 채울 수 있었다.

 

구대륙에 전해진 옥수수는 이런 가공가정을 생략한 채로 전달되었기에, 많은 장점이 사라진 불완전한 곡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북미대륙에서 식용과 가축사료로 가장 많이 재배되던 옥수수가 사탕수수와 함께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 것

 

우리나라에서도 옥수수와 감자는 사람들을 배고픔에서 구한 소중한 작물이었다. 특히 날이 춥고 비탈진 밭만 있는 함경도와 강원도에서는 거의 주식의 지위를 차지한 소중한 작물이었다. 밥과 수제비, 범벅과 같이 주식으로 이용할뿐더러 올챙이묵, 옹심이, 떡, 부침 등 간식과 반찬의 주재료가 되었다. 또한 옥수수로 술도 담그고 엿도 고아 여느 곡식 못지않은 훌륭한 쓰임새를 발굴해내었다.

 

이제 우리는 옥수수와 감자, 호박과 고추를 외래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외국에서 들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선 작물들도 지금은 신기하게 여기고 새롭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감자나 호박, 고추처럼 본디부터 있던 것으로 여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늘 먹는 것들의 유래를 따져보면 원래부터 우리 것이었던 것은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본디 이 지구가 배태한 식물들의 하나이니, 그것이 어디에서 왔든지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길러 먹는 것들은 모두 우리네 것들이다. 오히려 우리가 이 재료들의 새로운 용도를 발굴해 새로운 음식 맛을 낸다면 더 바람직한 우리 음식이 될 것이다. 식량자급률이 30퍼센트가 안 되는 우리에게는 우리 땅에서 조금 더 많은 음식재료를 길러내는 것이, 그래서 조금 더 신선한 음식을 먹는 것이 진정한 신토불이가 아닐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