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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속독--세계와 경쟁하는 지식근로자를 꿈꾸다

리첫 2016. 8. 22. 13:26

영어속독--세계와 경쟁하는 지식근로자를 꿈꾸다

 

어른들을 위한 변명

 

50~60년 전,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친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는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시대적, 사회적 여건이 모두에게 글을 가르칠 만큼 여유롭지 못한 탓이었다. 또 문맹이 절대 바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읽고 쓰지 못했을 뿐 일상적인 대화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고, 농업과 건설 등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며 우리나라를 재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라는 이유로 고용시장에서 제외되기 시작한다. 새로운 산업화 시대에는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이런 산업화의 요구에 맞는 인력을 대거 육성할 수 있었다. 당연시되던 문맹은 어느새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고, 문맹자들은 경제적으로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

 

‘글을 배울 시대적 여건이 아니었을 뿐이라고!’--아무리 항변해본들, 사회가 보기엔 그저 글을 못 읽는 낙오자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와 사회의 요구는 높아져만 갔다. 대학 학위, 토익 점수, 컴퓨터 활용 능력, 예전에는 소수가 가졌던 특별한 능력들이 이제 모두가 가진 별 볼일 없는 능력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는 계속해서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따라잡든지, 아니면 그냥 낙오되시든지.’ 기업들의 요구도 점점 노골적이 되어갔다. 아마도 IMF 만큼 기업들의 노골성이 그대로 드러난 시절이 없었으리라. 이때부터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일상화되었다. 기업과 사회는 경쟁력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사람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육체노동자부터 중간관리자까지 대량 해고시켜 거리로 내몰아버렸다.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몰리던 IMF 시절의 40~50대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그들 자신의 무능력과 게으름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을 늙고 지치게 만들었던 건, 다름 아닌 회사였다. 그들은 회사에 온 젊음과 열정을 바쳤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근무. 지친 몸을 달래기에도 부족한 주말. 그들이 자기 계발에 힘쓰지 못했던 건, 그래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건, 어찌 보면 너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젊음과 열정을 회사에 바쳤지만, 회사는 충성을 다한 노병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젊고 빠른 새로운 세대에 비하면 그들은 낡은 퇴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요건이 아니었을 뿐이라고!’--기업과 사회가 보기엔 그건 낙오자의 변명일 뿐이었다. 자기 계발은 철저히 각자의 책임이었고, 따라오지 못한 퇴물들은 부품 갈아 끼우듯 갈아치우면 그만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개 숙여 눈물 흘려야 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는가.

비극. 시대가 낳은 비극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비극은 이것으로 끝났을까?

 

지금, 또 다른 비극의 전초전이 열리고 있다. 그것은 세계화와 영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20대부터 50대까지 한국의 모든 지식근로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과거에는 적당한 토익 점수만, 혹은 가벼운 회화만 가능하면 영어 때문에 큰 불편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화의 물결은 전혀 다른 차원의 영어를 요구하고 있다.

 

수많은 외국계 회사의 자본이 몰려온다.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경쟁을 위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한국 회사에 외국인 사장이 오는 건 이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외국에서 고급 인력이 쏟아져 들어오며 우리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일하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선, 원어민수준의 영어 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한국의 지식근로자들은 세계화와 새로운 영어의 물결을 넘어서야 한다. 이런 사회 변화를 인식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 산업화 시대의 문맹들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간의 노력이나 가지고 있는 능력과는 상관없이, 오직 영어 하나 때문에 경쟁에서 그냥 밀려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직종을 불문하고 더욱 확산될 것이다.

 

아직 자라나는 세대들은 세계화의 위협에서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미칠 듯한 한국의 교육열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도 적응가능한 세대들을 길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아이들은 조기교육으로 아주 어려서부터 영어에 노출된다.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 이전에 영어에 노출된 이런 아이들은 듣기를 통해 분당 150단어를 이해하는 수준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또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분당 150단어로 읽고 쓰고 말하기까지 가능하게 된다.

 

조기 교육으로 무장한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시장에 진출할 때에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 능력을 이미 기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영어를 기반으로 세계화의 파고를 버텨나갈 수 있다.

 

문제는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를 넘겨버린, 20세 이상 성인들이다. 영어가 기본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교육의 기회가 많지도 않은, 사회에 이미 진출해 있는 세대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원어민처럼 분당 150단어를 이해하는 수준에 오를 수 있을까? 이들은 무엇을 가지고 세계화의 파고를 버텨나갈 수 있을까?

 

지금껏 이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나라 성인의 영어교육은 토익, 토플 테스트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것으론 원어민 수준의 영어가 불가능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다고 박탈당한 조기 교육 기회를 탓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외국인 전문 인력과 영어 기본 세대들 앞에서 조기 교육을 운운해 봤자 영어 못하는 어른들의 변명밖에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인들을 위한 탈출구는 없을까? 우리도 뒤따라오는 세대들에 밀려날 시기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 여기 내놓은 대안 한 가지가, 바로 영어속독이다. 즉, 성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기반으로 원서 리딩 속도를 빠르게 향상시키고, 이를 경쟁력으로 삼아 원어민 수준의 영어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만이 영어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우리가 모르는 여러 대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두고 싶은 것은, 영어속독이 20대 이상 성인들을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즉 성인들이 처한 현재 환경에 가장 적절한, 최선의 방법이다.

 

IMF시절이나 지금이나 기업들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는 더 빨리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더 많은 능력을 키울 것을 기대한다. 시간은 주지 않으면서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계발은 철저히 각자의 책임이고 뒤떨어지는 자는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영어 공부하기도 빠듯한데, 또 어느 세월에 업무 경쟁력을 키울까? 당장 책 한 권 읽을 시간도 없는데, 영어는 또 언제 하나?

 

업무 경쟁력을 높이면서 영어까지 해결할 수 있다. 영어속독을 통해 원서를 한글 책처럼 읽을 수 있다면 가능하다. 어차피 읽어야만 하는 책들, 원서로 읽으면 된다. 그리고 사실 이 둘은 함께 해야만 한다. 실제 업무와 생활에 당장 필요하고 활용할 영어를 해야만, 영어도 더 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화의 요구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7~8년 후 새로운 비극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20대 이상 성인들은 지난 세대들이 겪어왔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으면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왔으면서도 시대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희생되는 비극은, 이제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영어속독이 이 비극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