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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傳(식전)--음식의 혁명을 이끈 MSG

리첫 2016. 8. 24. 10:08

食傳(식전)--음식의 혁명을 이끈 MSG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약했던 오귀스트 에스코피(Auguste Escoffier)에라는 전설적인 요리사가 있다. 현대적 전통요리의 거장으로 알려진 그는 리츠 호텔에서 음식을 만들며 오늘날 서양음식의 기초를 세운 요리사다. 에스코피에가 자랑한 맛의 비결은 송아지육수에 있었다. 그는 송아지고기와 뼈, 그리고 요리에 쓰다 남은 당근과 양파, 셀러리를 넣고 향신료와 함께 푹 고아 육수를 만들었다.

 

에스코피에의 요리에서 핵심은 바로 이 육수였다. 고기를 팬에 굽고 난 다음에는 팬에 눌어붙은 고기에 이 육수를 부어 녹인다. 그런 다음에 고기에서 나온 기름기와 고기부스러기가 육수에 녹아들고, 그 졸인 국물을 다시 구운 고기에 바른다. 거기에 버터를 살짝 녹이면 그것으로 고기 요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수프를 끓일 때나 소스를 만들 때에도 이 육수를 적절하게 이용해 맛을 훨씬 좋게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맹물 대신 고기국물이나 멸치국물을 육수로 썼을 때 더 맛있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스코피에와는 별도로, 1907년에 동경제국대학의 교수였던 일본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池田 菊苗)는 다시마 국물에 푹 빠져 그 맛있는 국물을 화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이케다는 그 맛을 내는 성분이 글루탐산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글루탐산 자체는 아무 맛이 없지만 요리나 발효, 또는 햇빛에 의해 분해되면 L-글루타메이트라는, 혀로 맛볼 수 있는 아미노산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 입맛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다만 글루탐산은 불안정한 분자여서 대체로 맛이 없는 것들과 엉기려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트륨과 결합시켜 안정적인 염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글루탐산나트륨, 곧 MSG라 부르는 화학조미료다.

 

이 최초의 화학조미료는 일본에서 1908년에 아지노모토(味の本)라는 상품명으로 발매되기 시작한다. 맛을 내는 이 하얀 가루 조미료가 요리의 영역을 두루 점령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처음 소개가 되고, 1958년에는 ‘미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한다. 이 화학조미료의 생산에서는 글루탐산을 어떻게 하면 값싸게 추출하는가가 관건이다. 초창기에는 밀에 포함된 단백질인 글루텐과, 기름을 짜고 남은 탈지대두가 단백질 원료로 쓰였다. 이것들을 염산으로 가수분해해 글루탐산을 추출하고 다시 수산화나트륨을 중화해 글루탐산나트륨으로 만드는 화학적 방법이다. 나중에는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원료인 당밀을 미생물로 발효시켜 글루탐산을 추출했다.

 

어쨌든 이 화학조미료인 MSG의 탄생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다시마나 생선으로 육수를 추출하는 길고 번거로운 공정이, 단순히 소금을 치듯 조금만 뿌려 넣으면 간단히 해결되었다. 이 조미료의 등장은 요리에서는 거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하얀 가루의 마법

 

가정에서는 고기나 생선으로 국물을 내고, 아니면 간장이나 된장으로 맛을 내고, 콩가루, 깻가루를 섞고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 없어졌다. 그저 이 흰 가루를 조금만 치면 그런 과정을 거친 것만큼이나 신속하고 빠르게 효과가 나타났다.

 

국이나 찌개처럼 국물이 있는 요리를 만들 때는 말할 것도 없었고 나물을 무칠 때에도, 고기를 굽기 전에 양념을 할 때에도, 김치를 담글 때에도 이것만 있으면 음식 맛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 마법의 조미료는 재료 부족에서 오는 맛의 공백을 아주 손쉽게 해결해주니, 가난한 살림살이에 반찬값을 아껴가며 생활하던 주부들에게는 정말로 매혹적인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은 점차 그 맛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화학조미료를 치지 않은 음식은 무언가 맛이 부족한 듯하고 성에 차지 않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밖에서 먹는 음식들에도 화학조미료가 들어갔는데, 식당 주인의 처지에서는 재료비를 절약해주니 든든한 원군이 아닐 수 없었다. 외식업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1960-70년대에는 비교적 영세한 음식점들부터 화학조미료의 마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하얀 가루를 가장 매력적으로 이용한 곳은 중국음식점들이었다. 자장면, 짬뽕, 울면 등 기본적인 음식에서 여러 가지 고급요리에 이르기까지 중국음식점은 화학조미료로 다양한 마법을 부렸다.

 

하지만 이 화학조미료를 가장 반긴 것은 무엇보다도 식품회사들이었다.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고 공정을 단순화해야 하며 일관된 품질과 규격이 필요한 처지에, 음식 맛을 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에서 간단히 첨가하기만 하면 일단 웬만한 맛을 보장받는 셈이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MSG는 특히 국물 맛이 중요한 라면이 개발되면서부터는 라면 수프에 주로 쓰였고, 이후에는 다른 인스턴트식품의 영역으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주정에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도 맛을 내는 데에 이 MSG를 이용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