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재능을 잘못 알고 있다<2>
그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19세기 영국 귀족이자 대학도 나오지 못한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의 책이다. 젊은 시절 골턴은 사람들이 대부분 똑같은 능력을 타고나지만, 평생에 걸쳐 다양한 수준으로 능력이 개발된다고 믿었다. 인간의 재능은 모두 신의 선물이라는 오랜 신화적, 종교적 믿음에도 불구하고, 골턴이 살던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능력을 똑같이 타고난다는 생각이 인기를 얻었다. 이런 개념은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불씨가 된 18세기의 평등 이념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나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같은 유명 인사들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잠재력을 지녔다고 강변했다.
경제가 호황을 누린 19세기에는 그런 증거가 넘쳐나는 듯했다. 유럽에서부터 미국,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무역과 사업이 눈부시게 발전했고, 사람들은 어디서나 성공의 기회와 부를 움켜쥘 수 있었으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골턴은 이런 견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촌인 찰스 다윈(Charls Darwin)의 책을 읽고 난 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골턴은 이 생각의 전환에 힘입어 새로운 이론을 주창했다. 그의 이론은 재능이라는 문제에 관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도 그 영향력은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골턴 이론의 이러한 파급효과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그의 거리낌 없는 확신에서 기인한 것일지 모른다. 골턴은 자신의 책 <유전적 천재(Hereditary Genius)>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소년들 사이에, 또 성인 남성들 사이에 격차를 만드는 요인은 오로지 꾸준한 노력과 도덕성뿐이라고 주장하는 가설들을 나는 도저히 참기 힘들다. 아이들을 훌륭하게 자라도록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쓴 글에서 그런 주장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골턴은 여자아이나 성인 여성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전적으로 재능의 평등성에 반대한다.”
골턴의 견해는 단순했다. 키처럼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신체적 특징과 마찬가지로 ‘탁월함’도 유전된다는 것이다. 골턴은 “어느 정도 특출한 사람에게는 주변에 탁월한 친척이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보임”으로써 자기 이론을 증명했다. 그는 <타임즈(Times)>지에 난 부고 기사를 철저히 조사하여 판사, 시인, 장군, 음악가, 화가 등 ‘비범한’ 사람들 사이에 이런 경향을 보이는 수백 가지 사례를 모았다. 그 결과 특정 분야에서 나타나는 탁월함은 가족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반대로 해당 분야에서 나타나는 탁월한 업적을 이루려면 반드시 유전적으로 타고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탁월함이 유전된다는 이런 주장을 비웃기는 쉽지만, 그렇다고 골턴의 업적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의 정신적 특성에 적용함으로써 과학을 한 단계 발전시켰고, 오늘날 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널리 쓰이는 통계적 상관-회기 분석법을 개발했다. 또한 ‘인간의 위대함은 어디서부터 오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의 해답을 모색했으며, ‘본성 대 양육’이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아울러 골턴은 <영재 교육과 영재성의 개념에 관한 저널(Journal for the Education of the Gifted and Conceptions of Giftedness)> 같은 근대 과학 출판물에서 보듯이 ‘천부적 재능’이라는 화두를 과학적 탐구의 주제로서 제시한 인물이기도 했다.
영재성은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논란거리다. 여기서 영재성이란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재능과 같은 의미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재능의 개념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