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리첫 2013. 1. 30. 11:43

가난한 날, 나만의 독서법

 

하루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는 것은 시각을 짐작하게 해주지만, 밥 때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흉년이 아니더라도 그랬다. 두 끼는커녕 한끼만 제대로 먹어도 다행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진 지금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챙겨 먹으면 오히려 속이 더부룩해져 불편하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유난히 큰 흉년이 잦았다. 오랜 가뭄으로 고생을 하고 나면 그 다음 해에는 큰물이 나 농작물을 휩쓸어 가 버리고,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돌림병이 찾아들었다. 가뭄과 큰물이 번갈아 온 어느 해였다.

 

멀건 나물죽 한 그릇도 먹지 못한 채, 해가 뉘엿하도록 온 식구가 굶고 있었다.

 

꼬르륵 꼬륵 꼬르르륵 꼬르르르.

 

아침나절만 하더라도 뱃속 창자의 기세는 맹렬했다. 어딘가 달라붙어 있을지도 모를 한 톨의 곡식까지 찾아내려는 듯 창자는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제 풀에 지쳐 수그러든 지도 오래였다. 식구들도 저마다 방 안에서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을 터였다. 나는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방문을 바라보며 무능한 가장이 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를 새삼 서글퍼하고 있었다.

 

부질없는 생각들을 떨쳐 버리려 고개를 크게 저었다. 그러고 나서 소리 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렇게 책에 빠져 들어 있는데, 문득 내 목소리가 무척 낭랑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굶주려 비어 있는 나의 몸이, 소리를 내는 울림통이 되어 그런가 보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배고플 때뿐만이 아니었다. 추위에 떨 때, 근심 걱정에 시달려 마음이 복잡할 때, 아플 때도 책을 읽으면 그 모든 괴로움이 덜어지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문득 느꼈던 책읽기의 이로움을 나는 이렇게 써 두었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