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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5--루비콘 직후

리첫 2014. 2. 13. 16:34

 

그의 휘하에 새롭게 들어온 쿠리오에게는 3개 대대를 떼어준 뒤, 아드리아 해를 따라 남하하는 길목에서 염주처럼 늘어서 있는 페사로-파노-안코나를 차례로 공략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2개 대대와 함께 리미니에 남았다.

 

아레초 공략은 수도 로마에서 북쪽으로 가는 간선도로의 하나인 카시아 가도를 장악하는 것을 의미했고, 페사로-파노-안코나를 수중에 넣는 것은 수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간선도로인 아피아 가도를 시야에 넣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리미니를 확보하는 것은 로마에서 북쪽으로 가는 간선도로의 하나인 플라미니아 가도를 장악하는 것을 의미했다.

 

33세의 안토니우스도, 그와 같은 나이 또래인 쿠리오도 카이사르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1월 12일 새벽에 루비콘 강을 건너 같은 날 오전에 리미니에 입성한 뒤 계속 그곳에 머무르고 있던 카이사르에게는 그날 밤부터 벌써 승전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쿠리오의 3개 대대가 30킬로미터 남쪽에 있는 페사로 공략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곧이어 이튿날인 13일에는 파노 공략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그 이튿날인 14일에는 100킬로미터 떨어진 안코나도 수중에 넣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15일에는 안토니우스의 5개 대대가 아레초에 입성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이것은 모두 예상을 뒤엎은 카이사르의 행동에 폼페이우스 진영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허를 찔렸기 때문이지만, 갈리아 정복의 영웅에게 열광한 주민들이 카이사르 군대의 도착을 환영하기는 할망정 적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로써 카이사르는 카시아 가도와 플라미니아 가도라는 두 개의 간선도로만이 아니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까지 학보하게 되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수도 로마에는 사흘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18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