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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달인전(200년전 이땅의)--이희승

리첫 2016. 5. 10. 10:18

영어달인전(200년전 이땅의)--이희승

 

중동학교의 1회생으로서 22세부터 10년간 모교의 영어 선생을 지낸 윤제술(尹濟述) 옹과 오화섭(吳華燮) 교수도 중동학교에서 그(윤태헌:尹泰憲)로부터 영어를 배웠고 외국어학교 영어부 출신 이희승(李熙昇) 박사는 외국어학교와 중앙학교에서 전후 두 번이나 배웠다.

 

이러(日語)하면 사나? 영악(英學)해야 살지! 영악하면 사나? 노(露)둔해야 살지! 노둔하면 사나? 미(美)욱해야 살지!(*월탄<月灘> 회고록 참조)

 

1908년 12세에 입학한 이희승 박사는 이 속요의 암시와 이웃에 살던 영어부 학생 김경선(金慶善)이 “It is a dog.”라고 읽던 소리 때문에 외국어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시험은 국한문 혼용체로 천자문의 학우등사(學優登仕)(*‘학문이 넉넉하면 벼슬에 오른다.’는 뜻)를 적어내는 것이었다.(* 이희승은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에서 당시의 한성외국어학교 지원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미국과 일본의 말을 배우려는 학생이 많았기 때문에 일어부와 영어부는 시험을 치고 들어가야 했으나 나머지 3개부는 지원자가 없어 애를 먹었다. 시류<時流>의 정확한 반영이라 하겠다. 법어부, 덕어부, 한어부 등에 얼마나 지원자가 없었던지, 정부에서는 고관대작의 자제들을 강제로 외국어학교에 보내도록 하는 고육책을 쓰기도 했다. 구레나룻을 시커멓게 기른 양반집 자제들이 하인에게 장죽을 들려 등교하는 모습은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로 행차하는 것 같은 꼴이었다. 그런 억지 학생들이니 공부를 제대로 했을 리도 없다.”)

 

평생을 영어교육에 바친 윤태헌은 도미 유학생이었던 이기룡(李起龍), 윤치호와는 달리 국내에서만 영어를 배우고 가르쳤다. 그래서인지 윤태헌으로부터 외국어학교와 중앙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던 이희승 박사에 따르면 윤선생은 영어 회화보다 영문법과 영문 해석에 능통하였다고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