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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傳(식전)--밥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리첫 2016. 6. 29. 12:00

<들어가며>

 

食傳(식전)--밥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일을 하다가도 때만 되면 ‘먹자고 하는 일인데’하며 밥 먹자고 보챈다. 날마다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 밥이지만 밥의 의미는 각별하다. “밥 먹었니?”가 인사가 되고, 사람을 만나자는 이야기도 흔히 “밥이나 같이 먹자”라는 말로 대신한다.

 

밥상머리에서 마주하는 가족은 밥을 함께 먹는 ‘식구’가 되고, 이 외연은 더욱 넓어져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는 ‘한 솥밥을 먹는’사이가 된다. 한솥밥을 강화하는 의미는 회식으로 이어지며,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사이로 진전된다. 학창 시절과 사회생활의 사귐도 모두 밥을 매개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며, 애인을 사귀는 것도 그러하다. 혼자 먹는 밥이란 쓸쓸하기 짝이 없고, 다만 배고픔을 면하고자 억지로 삼킬 뿐이다.

 

신도 먹어야 산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면 ‘백일상’을 차려 잘 자랐음을 축하하고, 한 해가 지나면 ‘돌상’을 차려 친척 친지들이 모여 무병장수를 기원해준다. 생일을 맞는다는 의미는 태어날 때 어머니가 먹던 미역국과 생일상으로 되살아난다. 입학, 졸업, 취업을 축하하거나, 꼭 그런 일이 아니어도 기쁨을 표시하는 일은 밥을 사거나 함께 먹는 일로 형상화되며, 인생을 함께 하기를 기약하는 약혼식이나 결혼식도 언제나 같이 먹는 밥으로 마무리한다.

 

인생의 황혼에 장수를 축하하는 회갑과 고희도 모든 자식과 친지가 참석해 그득히 쌓아올린 음식을 함께하는 자리이고, 죽어서 초상을 치를 때도 손님들에게 밥을 먹여 보내야 상주는 안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죽어서까지 기일과 명절에는 밥을 사이에 두고 망자와 후손들이 재회한다. 제사를 올리는 자리에 음식이 없을 수 없으며, 가난에 시달려 평소에는 거의 굶더라도 제사상에는 쌀밥 한 공기는 올려야 하는 줄 알았다. 지상에서 사람들과의 나눔이 밥이었듯 망자와도 밥을 마주하고 나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신과의 접촉에고 어느 종교, 어느 문화권에서나 음식이 함께한다. 굿판이 벌어지면 온갖 떡과 음식이 가득한 상이 차려지고 이 음식들로 신을 맞는다. 아무리 없는 살림에 보잘것없는 신과의 만남에도 밥 한 그릇이 없을 수 없으며, 하다못해 부녀자가 치성을 드리는 데에도 맑은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빈다.

 

동물을 키우는 유목민은 신과의 교통에 주로 동물을 제물로 쓴다. 농사를 짓는 정착민도 동물을 희생으로 쓰기는 하지만 역시 자신들의 농산물이 주를 이룬다. 기독교는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구약에 나오는 야훼에 대한 제사는 동물을 희생으로 바쳤고 예수도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여 술과 떡을 제자들과 나누었다.

 

이렇듯 밥이 지닌 의미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크다. 집과 옷의 의미도 크다고는 하지만, 밥은 생명과 직접 연관되기에 이렇듯 많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뭘 먹을까? 몸이 달라는 대로!

 

현생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것을 대략 10만 년 전이라 치면 9만 년에 해당하는 세월에 대해서는 우리가 현재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저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1만 년 이전의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인류가 도구를 서서 사냥했으며 불을 이용했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어떻게 고기를 찢고 불에 굽고 요리했는지, 또 열매와 고기를 함께 먹었는지, 요리라고 할 만한 게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다만 여느 동물들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움푹 파인 돌에 바닷물을 붓고 바닷가에서 딴 굴을 짜게 조리했을 수도 있으며,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동굴에 매달고 훈제했을지도 모르며,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그 어떤 조리법이 있었을 수도 있다.

 

사냥한 동물의 내장을 다 먹었는지도 지금은 알 수 없다. 예컨대 어떤 서구인이 대양을 지나다 조난을 당했다. 다행히 낚시도구가 있어서 낚시로 허기를 메울 수 있었다. 서구인인지라 처음에는 살코기만 먹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 표류하는 서구인은 자신의 관습에 반해 내장을 먹기 시작했다. 자연적으로 먹고 싶어졌고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아주 맛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생선의 흰 살에는 미네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의 뇌가 미네랄을 섭취하기 위해 내장을 먹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에 따라 미네랄을 보충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몸이 원하는 것을 섭취하고자 하는 능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구석기 이전의 원시시대에도 사람에게는 다른 동물들처럼 몸에 필요한 것을 자연에서 찾아 먹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채취생활에서 먹음직한 것을 골라 씨앗을 심고 수확을 기다렸다. 수렵생활도 변하여, 온순하고 먹기 좋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어 기르며 알과 고기를 얻었다. 물론 농사와 목축이 하루아침에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냥과 채취의 시간에도, 먹음직한 식불들의 군락지를 관리하고 사냥감들의 개체수가 줄어들지 않게 조심스레 관리했을 것이다. 또 어떠한 동물들이 사람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들 곁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예의주시했을 것이다.

 

음식물을 얻는 방법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음식을 이전보다 훨씬 세심하게 가공하고, 재료들을 섞고 조리하는 방법도 더욱 안정되어갔을 것이다. 조리기구도 이전보다 훨씬 정교화하기 시작했다. 한곳에 머무르는 생활은 수확기가 아닐 때를 대비하는 방법도 발전시켰다. 곡식을 갈무리하고 채소를 저장하며, 고기를 말려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 지혜도 익혔다. 정착생활은 단순한 보관만이 아니라 재료들을 발효시키는 것과 같은 화학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음식의 조리기술을 발전시키고, 단순히 익히는 방법에서 벗어나 끓이고, 찌고, 굽고, 볶고 하는 여러 기술을 개발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