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傳(식전)--우리에게 밥은 과연 무엇인가
식전--우리에게 밥은 과연 무엇인가
음식이라는 것은 단순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등 여러 요소가 혼합된 인간 문화의 정수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재료, 그 가공과 조리의 방법, 음식을 먹는 방식과 태도, 연회와 제사는 인간 문화에서 아주 핵심적인 것들이다.
요즘 들어 삶의 질을 강조하면서 풍부해진 음식과 재료에는 아주 많은 신경을 쓰지만 우리 음식 문화에 대해서는 막연한 생각만 할 뿐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법과 건강식은 유행하지만 정작 우리가 먹는 음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거의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먹는 것은 전통이 깊어서 아주 훌륭한 것이라는 자기 최면에 빠져 그 배경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문화인류학에서 음식이 아주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관심이 조금 멀어진 듯하다.
우리에게 밥이 과연 무엇이고, 먹는다는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밥이 생명이고 인생이며 즐거움인 것은 틀림없겠지만, 밥에 담긴 내력과 함의도 결코 만만치 않다. 이제 밥상머리에서 밥과 반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여보자. 밥은 결국 하늘이고 우리 자신을 키운 것이라는 사연을.
옛사람도 우리와 같은 된장찌개를 먹었을까?
음식의 습관은 어떤 면에서는 지독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어려서 맛있게 먹던 것을 늙어서도 새록새록 기억하고 즐겨 찾기 마련이다. 그 어려서 먹던 것이란 또 아이의 부모가 즐겨먹던 것이다. 그렇기에 음식 맛처럼 변하기 어려운 것도 없는 듯싶다. 이러한 보수성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이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 보수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제사상일 것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집에서는 바나나나 오렌지를 제사상에 올리는 경우가 좀처럼 드물다. 이처럼 조상이 먹던 음식 맛을 바꾸기 어려워 제사상은 가장 보수적으로 차리며 심지어는 그 재료조차 수입품 쓰기를 꺼린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사과를 올리더라도 이전에 할아버지가 먹던 국광이나 홍옥은 살 수 없으니 요즘 나오는 신품종으로 대체해야 한다. 3대조 이상이면 아마도 능금을 올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입맛의 보수성과 혁신성
한편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피자, 햄버거, 도넛은 불과 2, 30년 전만 하더라도 먹어보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또 그 이전의 우유, 치즈 버터 등의 유제품은 유당분해효소가 없는 성인들에게는 비릿하기만 하고 역겨웠다.
게다가 새로운 음식재료도 슬그머니 등장해서 급속도로 퍼진다. 양상추, 파프리카, 셀러리, 키위, 멜론과 같은 서양 채소나 과일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졌으며, 특히 신세대들은 그 어떤 새로운 맛도 받아들일 태세가 갖춰진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음식에는 보수성의 법칙이 우세한가, 아니면 새로운 입맛이 우월한가? 60년대 나온 인스턴스라면과 70년대의 새우깡이 당시의 보수적인 입맛을 넘어서 득세한 것을 보면 새로운 입맛이 판정승인 것 같고, 아직도 변치 않는 쌀밥과 된장찌개, 김치를 보면 보수성이 우세한 듯하다. 하지만 거기에도 변수는 있다.
18세기의 된장찌개도 이랬을까?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된장찌개부터 생각해보도록 하자. 우리는 조상도 우리와 같은 것을 먹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00년 전의 사람들,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의 사람들도 과연 그랬을까?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된장찌개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라면 조개, 우렁이, 멸치, 또는 고기로 맛을 낸 국물에다 호박이나 파, 감자, 고추 등의 채소와 두부가 어우러진 모습을 누구나 상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된장찌개는 과연 언제부터 먹었을까?
우선 찌개와 국의 차이부터 생각해보자. 아무래도 찌개는 국보다 진한 국물을 뜻한다. 된장국은 이전에는 흔히 토장국이이라고 불렀는데 국을 한자로 표기할 때는 탕(湯)이라고 했다. 찌개에 해당하는 옛말은 ‘조치’로, 보통은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맑은 국물을 뜻했던 말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요즘의 전골보다는 훨씬 맑은 국물이었던 듯싶다.
여러 재료를 쓰는 조치는 계절별로 나는 생선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조치를 끓이려면 생선이나 새우젓과 같이 맛을 내는 것들이 필요하고 과정도 복잡해 서민적인 음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웬만큼 사는 양반집에서나 해 먹은 음식의 하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된장을 묽게 풀어 넣은 조치도 틀림없이 있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서민적인 음식이라면 강된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요즘도 강된장을 즐겨 먹기도 하거니와 가장 간편한 요리법이기에 더욱 그렇다. 보리나 좁쌀로 지은 밥이 주식인 서민 밥상에는 역시 간이 센 된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개화기에 외국인들이 남긴 글을 보면 한국 사람이 먹는 밥의 양에 놀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주로 밥으로만 배를 채웠으니 양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반찬은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어서 김치나 장 한 가지를 놓고도 그 많은 밥을 비웠다. 물론 된장을 그냥 먹기도 했지만, 강된장은 있는 양념이나 건더기를 넣고 되직하게 끓여내면 되기에 별다른 조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국을 끓이는 것은 다시 철마다 나는 채소를 건지로 넣으면 되니 아주 간단한 응용이다. 아마도 찌개도 여기서 크게 벗어난 요리법은 아닐 것이다. 건더기로 무엇을 넣을지는 정해진 게 아니라 되는 대로 있는 대로 재료를 더했을 공산이 크다.
된장찌개에는 분명히 반가에서 먹던 조치보다는 훨씬 서민적인 음식이었다. 조치보다 찌개가 더 서민적이라는 사실은, 반가의 규수들이 쓴 음식 책에 조치는 나오지만 찌개라는 명칭은 나오지 않음을 봐도 알 수 있다. 찌개의 어원에 관해 확실한 것은 없지만 대략 19세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밥상에 오른, 뚝배기에 끓인 음식이 일반화되면서 나온 용어인 듯하다.
문헌상 된장찌개가 나온 자료는 많지 않다. 18세기 영조 대에 발행된 “증보산림경제”(유중림이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증보하여 낸 것으로, 농사와 양잠 등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망라했다)에는 된장찌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아욱갱’의 요리법이 실렸는데, ‘아욱에 마른 새우를 넣고 장에 끓인다’고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갱’이란 ‘탕’과 대비되는 것이니 ‘탕’은 요즘의 ‘국’으로, ‘갱’은 찌개로 환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기록을 보면 18세기의 된장찌개는 정말로 단순한 것이 아닐 수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