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傳(식전)--어떤 재료가 언제부터 쓰였나
食傳(식전)--어떤 재료가 언제부터 쓰였나
그러면 요즘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내력을 점검해보기로 하자. 우선 주재료인 된장을 보면 우리나라는 거의 삼한시대부터 장을 먹었다. 된장이야 콩의 단백질을 발효한 음식이니 주재료는 콩과 소금이다. 콩은 요즘의 ‘대두’로, 고구려의 고지인 남만주가 원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재배된 것으로 확인된다. 소금은 한반도가 유명한 산지 가운데 하나였다.
메주를 담근 기록은 가장 오랜 우리나라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도 나온다. 신라 때 왕비가 될 사람에게 보내는 예물에 곡식, 옷감과 함께 메주가 들어 있었다. 메주가 있었으니 간장과 된장도 있었을 것이다. 삼한시대의 장은 요즘의 ‘간장’이나 짙다는 의미의 ‘된장’으로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짠맛의 기본 원료로 이용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뒷날 간장과 된장이 분리되었을지라도 기본적인 장맛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도 오래된 재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요즘 같은 대파가 아닌 쪽파가 쓰였으며, 대파는 최근에 들어서 상용하게 된 것이다. 냉이나 아욱 같은 채소들도 꽤 오래전부터 상식하던 작물이지만 두부는 고려 말부터 사용하던 음식재료다. 하지만 그 밖의 양파, 호박, 감자, 고추와 같은 재료들은 역사가 일천한 것들이다.
양파는 앞에 붙은 ‘양’자가 서양에서 전래된 것임을 의미하고 있으니 근대에 들어온 작물이다. 호박처럼 ‘호’자가 들어간 것(또는 음이 변해 ‘후’가 된 것도 포함하여)은 대부분 중국을 통해 들어온 북방에서의 전래품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호박이 전래된 것은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의 일로, 중국을 통해 전래되었으니 적어도 18, 19세기는 되어서야 들어온 것이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도입된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초기에 ‘남만초’, ‘왜개자’와 같은 이름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남쪽을 통해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감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이라 꽤 일찍부터 재배한 것 같지만 실은 고구마보다도 거의 한 세기나 늦게 우리나라에 상륙한다. 고구마는 1763년 조엄이 일본에 통신사로 가던 중 대마도에서 종자를 부산으로 보낸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리하여 19세기 초에는 중부 지방까지 고구마가 재배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고구마도 흔한 것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감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이규경은 잡학 백과사전이라 할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감자가 19세기 초에 청에서 관북지방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또 이규경은 명천에 사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북쪽에서 종자를 가지고 왔다는 설과, 청나라 사람이 인삼을 몰래 캐러 왔다가 인삼밭에 심어놓았던 것이 남아 전파되었다는 설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862년에 김창한이 지은 “원저보”를 보면, 1832년 영국 상선 로드 애머스트 호가 태안반도에서 약 한 달 동안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 배에 동승한 네덜란드 선교사가 마령서(한자로 馬鈴薯, 곧 말방울처럼 생긴 마와 같다는 이름이다) 종자를 농민들에게 나눠주고 그 재배법을 습득해 전파한 내력과 감자 재배법을 엮은 것으로, 상당히 믿을 만한 것이다.
그러니 감자는 대체로 19세기 중반이 되어야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것도 더 엄격히 말하자면 일제강점기가 되어야 생산량이 급격히 늘기 시작하니, 지금처럼 감자를 사용하게 된 것은 불과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안데스의 산물인 감자는 유럽으로 전해졌으나 땅속에서 난다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유럽에서는 식용작물이 되는 데에 거의 20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렇기에 유럽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아주 늦은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 없이 급속도로 전국에 보급된다. 이런 현상은, “서동요”에서 보듯 옛날부터 이와 유사한 마, 토란 등을 늘 먹어왔기에 땅속에서 나는 근채에 대해 별다른 저항감이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감자는 일제강점기에 그야말로 급속도로 번져가서 함경도나 강원도에서는 주식의 위치까지 올라갔다. 우리가 감자에 너무도 쉽게 적응했으니, 상용하는 음식재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된장찌개에도 들어갔을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