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傳(식전)--먹은 지 고작 100년인 배추김치가 한민족의 자존심?
食傳(식전)--먹은 지 고작 100년인 배추김치가 한민족의 자존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적어도 김치, 고추장, 된장찌개 먹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김치를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으로 꼽는 데에 주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치에 대한 자긍심은 한없이 드높아, 김치는 건강에도 좋은 독창적인 발효식품이자 조상대대로 먹던 우리 고유의 것, 위대한 유산이라 생각한다.
중국에서 김치를 수입해 먹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어서 중국에서 생산된 김치에 무슨 하자가 있으면 김치전쟁까지 치를 태세인 듯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에게는 김치 공수가 시작되며, 만일 김치가 없으면 성적도 좋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네 식탁에서 김치 없는 밥상은 생각할 수 없으며, 자장면이나 돈가스를 먹을 때에도 김치를 찾는다. 외국인이 보기에는 한국인이 김치 중독에 걸린 듯이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일본과 중국을 점령한 김치의 맛”, “세계에 진출하는 김치”, “기무치가 아닌 김치”, “김치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 등의 구호를 보면, 김치가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다른 나라 사람들도 김치를 맛있게 먹는 게 마치 우리 한국의 위대함을 전파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쩌면 “김치는 우리의 가장 뛰어난 전통음식이고 자랑이어서 민족의 우수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민족주의적 실체에 이르기까지 한다.
김치가 빨갛게 물든 까닭은
김치라고 하면 우리가 처음 떠올리는 생각은 보통은 젓갈과 고춧가루가 풍성하게 들어간 배추김치를 뜻한다. 특히 김치의 정수는 늦가을에 담그는 김장김치다. 하지만 이 배추김치가 과연 그렇게 오래된 것이며 지금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우선 지금은 김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춧가루는 신대륙의 산물이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기야 백김치도 있고 동치미도 있으니 고추가 김치의 필수품은 아니다. 고추가 없었던 때의 김치는 백김치만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우리는 원래부터 매운 맛을 즐겼다. 고춧가루 이전의 시대에는 산초가루나 초피가루 같이 매운맛을 내는 다른 재료를 찾아 썼다. 물론 고려시대의 귀족계층에서는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후추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비싼 수입품은 서민들 음식에 쓰기에는 너무 귀한 재료였을 것이다.
이 매운맛은 우리에게는 무척 중요했다. 남쪽에서 담그는 김치는 지금도 소금 간이 북쪽보다 훨씬 강하다. 기후 때문에 금세 쉬고 보존이 어려워 재료를 훨씬 짜게 절이는 것이다. 소금만으로 이렇게 짜게 한다면 김치는 거의 쓴맛이 날지도 모른다. 이 단점을 메우려고 18세기 후반부터는 김치에 젓갈을 넣게 된다. 젓갈을 넣은 김치는 아미노산 때문에 맛은 훨씬 좋아지지만 비릿하다. 물론 젓갈이 아미노산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니 간장을 쓸 수도 있고 실제로 이전에는 간장으로 담근 김치가 있었다. 이것 역시 전통의 한 변형이지만, 간장은 늘 먹는 김치를 담기에는 양에서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젓갈을 쓰고 나서는 그 비릿함을 없애려고 산초나 초피의 매운맛을 사용했던 것이고, 고추가 들어온 뒤로는 더 쉽게 재배할 수 있는 고춧가루로 대체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산초가루가 쓰이기는 한다. 추어탕을 먹을 때에는 으레 이 산초가루를 넣어 맛을 내고, 남도에서는 아직도 산초 특유의 향을 좋아하는 집이라면 고춧가루와 함께 산초를 넣기도 한다. 이 산초로는 고추장 이전에 있던 산초장을 만들기도 했다.
산초장의 제법에다 산초를 고추로 대체한 것이 고추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 산초장의 제법은 지금 고추장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고추장 담그는 과정을 보면 무척 복잡하다. 우선 고추장용 메주를 띄어 가루를 만든다. 그리고 찹쌀, 쌀, 보리 같은 곡식으로 떡을 만들고 엿기름을 넣어 달게 만든다. 여기에 메줏가루와 고춧가루를 넣고 숙성시킨 것이 바로 고추장이다. 이렇게 보면 고추장은 한순간에 발전한 음식이 아니라 복잡한 과정을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한 음식이다.
고추장처럼 곡식과 소금, 그리고 엿기름으로 당화시킨 음식으로는 식해를 들 수 있다. 식해는 함경도의 가자미식해를 비롯해 경상남도 지방에서도 전해오는 요리법이다. 주재료가 생선이라는 점이 고추장과 다른데, 고추장에서는 메주가 생선의 단백질을 대신한다.
아무튼 산초장이 약용으로 쓰였는지 음식으로 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식용과 약용의 차이는 아주 미묘하다고 봐야 한다. 대개 귀하고 드문 것이면 약용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귀한 음식이 약이라는 뜻이지 요즘의 한약이나 양약처럼 병에 직접 대응한다는 뜻은 아니다.
산초나 초피 모두 대량생산에는 문제가 있는 재료였다. 나무에서 산초 열매를 따고 씻어서 말리고 가루로 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 채취에서부터 가루로 만들기까지 손도 많이 가거니와 나무라는 한계 때문에 생산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초피도 나무껍질을 벗겨 말려 빻아야 하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산초장에 약용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은 이 생산력의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추처럼 왕성한 생산력을 보이는 작물도 드물다. 초여름부터 고추를 맺기 시작해 그 앙상한 몸에 어찌 그리 많은 고추가 열릴까 정말 신기할 정도로 가을에는 붉은 고추를 드리운다. 산초나 초피에 비해 재배가 손쉬운 고추가 들어오자 매울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귀한 산초와 초피를 고추로 대신한다. 매운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고추는 정말 값싸고 좋은 향신료였던 것이다. 산초를 김치에 넣던 전통 때문에, 고추의 재배가 보편화되면서 우리 김치는 빨갛게 물들어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