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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傳(식전)--부뚜막 위의 법고창신

리첫 2016. 7. 30. 10:34

食傳(식전)--부뚜막 위의 법고창신

 

배추김치는 보수성과 재료의 혁신이 긴 세월 숙성되어 요즘과 같은 훌륭한 김치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김치처럼 채소를 소금에 절여서 먹는 것은 우리만의 요리법은 아니다. 중국에도 일보에도 있으며 동남아시아에도 있다. 심지어 서구에도 양배추절임 같은 음식은 흔하다.

 

하지만 그네들은 절임채소에 식초를 첨가하는 것 같은 단순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금에 절인 채소를 발효하는 것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다 다른 재료를 혼합해 온전한 음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을 뿐이다.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것이 힘든 법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추김치의 역사를 보면, 지금은 보편적인 음식이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오늘날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음식들의 전통 깊음만 자랑할 게 아니라, 평범한 음식을 화려하게 꽃피운 창의력과 변용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음식은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에는 재료도 재료지만 조합과 창의성의 숙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김치를 중히 하려면 겉만 보지 말고 그 안에 든 창의성을 보아야 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은 사상이나 철학처럼 고귀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부엌의 도마 위에도, 부뚜막과 항아리 안에도,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손끝에도 오롯이 새겨져 있다.

 

단군신화의 곰은 마늘을 먹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우리 것이 좋다’고 한다. 그것이 먹을거리라면 더욱 그렇다. ‘신토불이도 자주 쓰는 말이다. 이 말이야, 범람하는 외국 농산물로부터 우리 농민을 보호하고자 우리 농산물을 먹자는 캠페인의 표어로 농협에서 쓴 것이 유행해서 이제는 거의 일반적인 용어가 됐다.

 

이 말의 뜻은 ‘우리 흙에서 난 우리 작물이 우리 몸에 맞는다’인데, ‘우리 흙’은 문제가 없지만 ‘우리 작물’은 문제가 있다. 과연 무엇을 우리 작물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 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식물은 우리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식물 대부분은 우리 땅에서 자생하던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쌀, 보리, 밀 등 곡식만 보아도 그렇다. 확실히 언제라고 못을 박기는 쉽지 않지만 이 작물도 먼 길을 돌아 우리 땅에까지 전래된 것이다.

 

더군다나 쌀과 같은 작물들은 현재 기르는 것과 옛날에 기르던 것이 다르다. 주곡의 부족이 문제가 되자 농촌진흥청에서는 많은 쌀을 얻을 수 있는 종자들을 개발했고 이들 대부분은 필리핀과 동남아시아에 남아 있던 벼들과 성질을 섞은 것이었다. 이제는 밥맛이 기준인 종자를 심지만, 이것들도 여러 종이 섞인 것이라 국적을 논할 수 없는 다국적 종자들이다.

 

채소는 어떨까? 고구마, 감자, 호박, 토마토, 고추 같은 것은 신대륙이 원산지이기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에는 구대륙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게 자명하다. 하지만 다른 채소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중국의 배추, 인도 북부의 오이와 순무, 페르시아의 양파, 카스피 해 서안의 무, 소아시아 반도의 당근, 이탈리아 북부의양배추, 발칸 반도의 우엉, 인도의 가지와 연근, 미얀마의 토란, 자바 섬의 생강 등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식재료의 원산지다.

 

우리가 흔히 쓰는 파와 마늘만 하더라도 원산지가 중앙아시아다. 쪽파는 오래된 것이지만 대파는 최근에야 들어왔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이 쑥과 함께 먹은 마늘도 아마도 지금의 마늘이 아니라 달래와 같은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먹는 마늘은 한나라 때에 장건이 중앙아시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고유종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은 몇몇 나물만 빼면 거의 없는 셈이다.

 

우리가 길러 잡아먹는 동물은 또 어떨까? 소와 돼지와 닭을 기른 것은 아주 오래되었을지 몰라도 소를 제외한 가축은 지금 우리가 먹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축산물 대부분은 종자를 외국에서 들여왔다. 한우는 우리나라에서 기른 지 무척 오래된 종이지만 육우와 젖소는 해방 후에야 들어왔다. 원래 기르던 돼지, 닭, 오리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 종자는 불과 몇 십 년 전에 들여다 번식시킨 것으로, 빨리 크게 자라고 고기의 질이 좋거나 젖이 많이 나오거나 알을 많이 낳는 종자다.

 

원래 기르던 것이라도 이 또한 먼 옛날에 가져와 번식시킨 것이다. 이들이 먹는 사료도 대부분 수입한 것이니 고기에서 ‘신토불이’라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신선함이나 유래를 믿을 만하다는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을 지닌다는 사실은 확연하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이 먹는 것은 대동소이하고 다만 기후와 토양에 다라 몇몇 특산물이 눈에 띌 뿐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농사짓고 가축을 길러 먹는 곳이라면 모두, 인류와 함께 여행하며 종자를 개량해온 외래종을 먹는 것이고, 본디부터 제 땅에서 자란 작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모든 것은 서로 전파하고 전해 받으면서 개량하고 다시 기나긴 여행을 겪는다. 일방적으로 전해 주기만 하거나 전해 받기만 하는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이 들어온 시기와 재배하기 시작한 역사만 있을 뿐이다. 지금 세상에는 자기 땅에서 자생하는 ‘우리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지에 고립된 원주민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