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39~42쪽>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내 마음속의 백탑
언제부터 저 백탑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서 있었던 것일까?
보잘것없는 체구인 나이지만, 가슴속에 서 있는 백탑을 느낄 때면 왠지 허리도 가슴도 꼿꼿이 펴지는 것 같다. 나도 백탑처럼 세상에 우뚝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달님이 보름을 향해 둥글게 가고 있는 어느 가을밤, 남산 자락에 있는 처남 집에서 문득 도성 안을 내려다보던 때였을까.
나지막하게 엎드린 초가지붕과 기와지붕 위로 탑이 홀로 높이 솟아 있었다. 탑은 하얗고 기다란 촛대처럼 보였다. 그 위를 달빛이 촛농처럼 고요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두울수록 더욱 은은하게 빛나는 탑의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다보고 있는데, 탑도 눈길을 길게 늘여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눈길과 눈길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서늘하고도 흰 탑 하나가 내 가슴속에 냉큼 들어와 서는 듯했다.
아니면 개천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던 어느 봄날, 천천히 운종가를 거닐다가 문득 탑이 서 있는 옛 절터 쪽을 바라보던 때였을까.
흰옷 차림의 사람들은 봄을 맞은 저잣거리를 구름처럼 바쁘게 흘러 다니고 있었다. 딱히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내 발걸음은 모처럼 여유롭고 가벼웠다. 그러다 흘낏 옆으로 눈을 돌렸을 때, 고개를 길게 늘여 빼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는 탑의 윗몸이 보였다. 햇살을 받은 탑은 더욱 눈부셔 보였고, 탑의 몸에 묻은 초록빛 이끼들도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정신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환하고도 흰 탑 하나가 내 가슴속에 사뿐 들어와 서는 듯했다.
캄캄한 밤에도, 환한 낮에도, 도성 안 어디에서 눈길을 돌려도, 탑은 제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었다. 헌칠한 탑의 키는, 사람 키의 일곱 배가 된다고도 하고 여덟 배쯤 된다고도 했다. 밤하늘의 달님도 도성 안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저 탑을 보고서야, 비로소 조선 땅을 제대로 찾아온 줄 알았을 것이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탑은, 멀리서 볼 때와는 또 다르다. 삼층으로 된 아래 기단은 튼튼하면서도 웅장하고, 그 위에 다시 쌓아 올린 십층 돌탑의 높이는 더욱 까마득했다. 게다가 모란과 연꽃, 용, 사자 등 탑의 모든 면에 가득한 조각들은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돌을 쪼아 만들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탑의 몸에 피어오른 이끼마저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였다.
탑이 이 옛 절터에 서 있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백 년도 훨씬 전인 1468년, 세조 임금님 때부터라고 한다. 궐 안의 임금님은 화려한 절을 지어 탑의 모습을 빛내 주려 하였지만, 궐 밖의 백성들은 이름 모를 풀들과 은은한 달빛이 탑과 함께할 수 있도록 옛 절터를 그대로 남겨 두었다. 화려한 치장을 하고 탑의 주위를 돌던 사람들은 없어졌지만, 스스럼없이 탑의 아래 기단에 주저앉아 고단한 다리를 쉬어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낮에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밤에는 마음이 울적한 사람들이 찾아와 말없이 앉아 있다 가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원각사 십층석탑’이란 본래의 긴 이름 대신에, 그저 ‘백탑’이라고 정겹게 불렀다.
나는 한동안 백탑을 홀로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 다른 벗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직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저마다 사는 곳이 다를 때에도, 탑을 바라보는 눈길만큼은 가끔씩 밤하늘 어딘가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탑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을 차례로 백탑 가까이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친척 집으로 셋집으로 정처 없이 떠돌던 나는, 드디어 백탑 아래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1766년 5월이었다. 바깥채도 따로 없고 이엉을 인 지붕마저 손질이 안 돼 엉성한 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길게 목을 늘인 탑은, 밤늦도록 책을 읽고 있는 내 방이 불빛을 언제나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때면 탑의 눈길을 따라온 달님도 우리 집 지붕 위를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큰 절 동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대사동(大寺洞)에서 탑과 함께 살게 되었다. 큰 절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기에 불리던 이름이었다. 나처럼 탑을 아끼는 벗들과 스승이 함께 모여 산 동네였다. 1766년부터 1783년까지, 백탑 아래에서 보낸 나날들은 내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