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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리첫 2017. 2. 11. 19:08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벗들이 지어준 나의 공부방

 

백탑 아랫동네로 이사한 지 세 해쯤 되던 해였다. 바야흐로 봄이 한창 무르익은 오월 어느 날이었다. 탐의 몸에 피어난 이끼도 계절답게 짙은 녹색 빛을 띠고 있어서, 가까이에서 본 탑은 흰색이 아니라 연녹색으로 보였다.

 

벗들만 간간이 드나들던 호젓한 나의 집에, 별안간 굵은 나무와 연장을 짊어진 장정들이 들이닥쳤다. 집안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리둥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좁은 마당에 짐을 부려 놓는 사람들 뒤로 유득공과 백동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여전히 까닭은 알 수 없었다.

 

“매부, 이 사람들에게 마당을 좀 빌려 주시지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백동수가 먼저 말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새겨 봐도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하필이면 비좁은 내 짐의 마당을 빌려 달라니, 차라리 집 밖 빈터가 더 넓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득공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여기 방 한 칸을 만들려고 합니다. 편안하게 책도 읽고, 저희도 자주 찾아와 함께 지내고......”

“......”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찾아온 벗들을 한 번도 편안하게 맞이하지 못한 지난날들이 그림처럼 지나갔다.

 

우리 집은 바깥채가 따로 없이, 좁은 마루를 사이에 둔 방 두 칸이 전부였다.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나와 함께 있던 어린 동생은 형수와 조카들이 있는 방으로 건너가야 했다. 출타한 아버님이 돌아오시면, 나는 찾아온 벗들과 함께 슬그머니 바깥으로 나와야만 했다.

 

어쩌다 비좁은 방 안에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어도 편치 않았다. 행여 손님에게 방해될세라 아내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아이들을 꾸짖는 소리는 문풍지 사이로 바람과 함께 흘러 들어왔다. 늦은 밤이면 더욱 조심스러워, 목소리를 낮추는 것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추운 겨울날에는 칼바람이 그대로 몸에 감겨들었고, 쌓였던 겨울눈이 녹기라도 하면 썩은 초가지붕에서 누런 물이 흘러 내렸다. 얼었다 녹은 자리에서도 누런 물이 배어 나와 앉아 있는 손님들 옷을 누렇게 물들이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손님은 손님대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다 못한 벗들이 가진 것을 조금씩 내어 서재를 지어주자는 의논을 한 듯싶다. 얼마 전, 백탑 아래 사는 또 다른 벗 서상수의 집에서 꽤 많은 책들이 서적상으로 실려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보니 그가 아끼던 책들이 마당에 불 놓은 나무가 되어 내 집으로 찾아온 모양이다. 다른 벗들도 모두 넉넉한 형편이 아니니, 저 속에는 그들의 책도 제법 들어 있을 것이다.

 

“이곳의 일은 저 사람들에게 맡겨 두고,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고개를 떨어뜨리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득공이 내 팔을 끌었다. 일꾼들은 어느새 부지런히 땅을 고르며 굵은 재목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형편을 눈치 챈 아이들은 환한 표정으로 그 주위를 빙빙 돌아다녔다.

 

자그마한 서재 한 채를 짓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늘도 궂은 인상 한 번 씨지 않았고, 부드러운 오월 바람은 몇 번이고 흙벽을 쓰다듬으며 단단하고 매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달이 다 가지 않아 내 집 마당에는 새로운 집 한 채가 자리를 잡았다. 방 하나가 전부인 건물이지만, 새로 올린 지붕의 풀 냄새가 향긋하고 종이로 바른 흙벽이 벗들의 마음처럼 은은하고 정겨웠다.

 

마침내 서재가 완성된 날, 벗들이 내 집에 모여들었다. 아내는 모처럼 조촐한 술상을 차려 내었다. 집을 짓는 틈틈이, 밤새워 바늘을 놀려 가며 애써 마련해 둔 것이리라. 여기에 벗들이 저마다 들고 온 꾸러미를 펼쳐 놓으니 잔칫상이 따로 없었다. 여전히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야 할 만큼 좁은 방이었지만, 나에게는 온 세상을 차지한 것처럼 넓기만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만의 편안한 공간을 얻게 된 감격에 울먹울먹 속이 일렁여서 그런지, 그날따라 술기운이 빨리 올랐다.

 

벗들은 청장관(靑莊官)이라는 나의 호를 따서, 새로 지은 서재에 ‘청장서옥(靑莊書屋)’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온전한 나만의 공부방이자, 두런대는 벗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우리의 사랑방이기도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