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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食傳)--개를 먹는 것도 공자님 탓

리첫 2017. 2. 16. 16:06

식전(食傳)--개를 먹는 것도 공자님 탓

 

인간이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가장 절실한 문제는 역시 먹을 것이었다. 나무 위의 과실들은 늘 있는 게 아니었고, 풀들은 먹기에 너무 억세고 거칠었다. 인간은 농사를 짓기 전까지 거의 몇 만 년의 시간 동안을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해야 했다. 채집에서 얻게 되는 것들은 과실이나 고기가 주 대상이었다. 하지만 과실보다는 사냥이 먹이 획득으로 더 좋았으니, 농경, 목축의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 동안 동물의 고기가 주된 식량이었던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 표범처럼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는 이 불쌍한 존재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고, 창과 활과 도끼 같은 사냥도구를 만들고 집단을 이루어 협력하면서 사냥감을 속이는 꾀를 써서 이 난관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그 수확은 사자나 표범에 비해 훨씬 비능률적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커다란 동물을 잡아 며칠 동안 포식했을 수도 있지만 오랜 굶주림 속에 맛보는 작은 동물의 고기도 정말로 달콤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우리와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도 고기 맛을 안다. 평소에는 나무의 열매와 잎사귀 같은 채식에 만족하지만 벌레도 잡아먹고 심지어는 동료를 죽여 고기 맛을 보기도 한다.

 

수만 년 세월의 육식 본능

 

인간은 차츰 영역을 넓혀나가 전 대륙에 이주하게 되었으며, 이때 개발한 도구와 무기, 협력방식 덕분에 빙하시대의 혹독한 시련 동안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매머드 같은 동물은 논 속을 헤매며 이끼들을 찾아 먹다가 인간의 속에 죽어가 든든한 식량이 되었다. 사냥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 엄청난 크기 때문에 한번 사냥에 성공하면 많은 무리의 식량으로 긴 기간 동안 넉넉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빙하기의 시련이 끝나고 따뜻한 세상이 다시 찾아오자 인간은 다른 어느 동물보다 강인하고 똑똑해져 있었다. 순한 초식동물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키우고, 씨앗을 가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차츰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이 되었다.

 

농사를 짓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생활이 전보다 안정되고, 넉넉해졌을지는 몰라도, 음식물은 곡식의 탄수화물 위주로 재편되었기에 질이 오히려 떨어졌고 고기에 대한 그리움은 줄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고기를 접할 기회는 동물을 이끌며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보다 적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가운데서도 야생 동물을 잡기도 하고,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나를 때 이용하던 동물이 죽으면 고기 맛을 보았을 것이다. 수만 년의 세월 속에 자리 잡은 육식 본능이 몇 천 년 농경생활로 수그러들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얻는 데에 고기보다 더 효율적인 것은 없다.

 

기나긴 농경생활이 끝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사도 대규모화되어 고기를 목적으로만 가축을 기르는 세상이 되었다. 삶이 조금만 윤택해지면 가장 먼저 찾는 게 고기반찬인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다. 예컨대 산업혁명을 거친 영국은 어느 정도 잘 살게 되자 상류층에서 시작해 하류층까지 육식의 광풍이 몰아쳤고, 우리도 형편이 나아진 80년대부터는 고기를 부쩍 찾게 되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고기를 굽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