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자유교육<46>
자유학교가 덴마크 교육제도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1>
19세기 덴마크의 농촌 지역에서는 종교적 각성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와 병행하여 성인들을 위한 기숙학교로 구성된 자유학교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학교는 농촌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들 삶에 대한 책임과 조국의 운명을 스스로 떠맡도록 하기 위한 것이자, 그들 자신을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제도를 창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학교 운동의 정신적 기초를 놓은 두 사람이 있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시인이자 문필가인 그룬트비와 소크라테스적 학교 교장인 콜이다. 농부들은 이들의 사상과 실천을 따라 전국에 자유학교를 세우고 또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이들 사상의 핵심은, 학교는 삶을 위한 것으로 학생들의 영적,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 사회적, 실천적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전인으로 자라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의 주된 방법 중 하나는 ‘살아 있는 말’, 즉 신화와 이야기, 전기, 설화, 역사, 영웅담 등이다.
1) 운동의 전개 양상
덴마크에서 군주제를 대치하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의 자유학교 발전 초기 단계(1850~1920)에서, 이들 새로운 정치 구조와 자유학교운동은 덴마크 국가 발전에 주요 추동력이 되었다. 창조적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고, 경제와 교육,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민주적 태도와 정치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산업사회가 발전하면서, 1920년에서 1970년에 이르는 사이 공산품과 도시 문화는 경제와 문화, 정치 구조에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 이에 맞물려 농산품과 농촌 문화는 그 중요성이 감소했다. 어린이를 위한 자유학교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이제는 지역에서 조용하고 다소 고립된 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반면 시민대학은 농촌생활에서 교육적 삶의 의미를 인정받으면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운동의 의미는 사회에서 폭넓게 인정되었는데, 이는 자유학교 운영의 재정적 책임을 국가에 지우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1960년대 자유를 지향하는 학생들의 반란기 동안,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 전개에 비판적이며 관심을 가진 학부모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모임들과 중앙집중화 과정에서 학교가 사라진 농촌 지역 사람들은 자유학교법이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아울러 다른 교육학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자유학교와 사립학교들을 세웠다. 1960년대 이래 자유학교 재학생 비율은 5~6%에서 13%로(2003년 기준) 증가했다. 현재는 210개의 학교가 운영되고 있고 협회도 7개가 된다. 그중 가장 큰 협회는 ‘덴마크 자유학교 협회’로, 여기에 속한 대부분의 자유학교는 그룬트비와 콜의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