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르치는 교수<24>
잘 가르치는 교수<24>
‘볼링형’을 ‘탁구형’으로 바꿔라
재미있는 실험이 하나 있다. 두 사람이 A4 용지를 한 장씩 들고 등을 지고 앉는다. 한 사람이 자신이 직접 종이를 접고 찢으면서, 뒷 가람이 똑같은 종이 모양을 만들도록 설명을 한다. 이때 뒷사람은 질문을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 5분 정도 지난 후 종이 모양을 서로 확인해본다. 과연 두 사람의 종이 모양은 똑같을까?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역할을 바꾸어서 실험을 해본다. 이번에는 설명을 듣느 사람이 질문을 할 수가 있게 한다. 5분 후 두 사람의 종이 모양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모양이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실험을 통해 의사소통에서 왜 질문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질문은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해주며, 의사소통이 정확이 이뤄지도록 돕는 좋은 장치다.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수업 방식은 살펴보면 퍽 대조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아주 쉬운 일상의 문제를 질문으로 던진다. 그러면서 제자들의 답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 한다. 반대로 공자는 제자들이 먼저 질문을 해오도록 하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 답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얼마나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나 공자처럼 학생들과 묻고 답하면서 수업을 한다면 효과가 클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떤까? 학생들은 교수들이 일방적으로 수업한다며 불평을 많이 한다. 그래서 토론식 수업을 시도하려고 하면, 이제는 학생들이 구경을 할뿐 잘 참여하지 않는다. 심한 경우에는 물어도 반응을 하지 않거나, 아예 수업을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입시 위주의 초-중-고등학교 교육이 만들어낸 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같은 서구에서는 수업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질문을 주고받다 시간을 다 보낸다. 거기서 질문을 안 하면 바보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수업 시간에 질문을 주고 받으면 다른 학생들이 시간낭비로 여긴다. 교사나 학생이나 질문을 주고받지 않아도 중간은 가는 문화에 익숙해진 학생이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질 리 없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한국 학생들은 토론과 비파 능력이 부족해 외국에 가서도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 한국계 김승기가 2008년 컬럼비아대에 제출한 박사논문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 입학한 한인 학생의 중퇴율은 44%나 됐다.
수업이란 숨쉬기와 같아서 교수와 학생이 상호작용을 해야 효과가 난다. 이 상호작용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묻고 답하기’다.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책 <질문의 힘>에서 질문의 유익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질문은 학습 기회다.
* 질문은 의사결정과 문제해결력을 높인다.
*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온다.
* 질문은 생각을 자극한다.
* 질문은 하면 정보를 얻는다.
* 질문을 하면 통제가 된다.
* 질문은 하면 마음을 열게 된다.
* 질문은 귀를 기울이게 한다.
* 질문에 답하면 스스로 설득이 된다.
질문은 무엇보다도 학습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수업 현장에서 질문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좋은 학습효과를 누릴 수 있다. 질문과 응답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교수가 학생에게 묻고 학생이 답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학생이 교수에게 묻고 교수가 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