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유도 모른체 무리따라 달리기…모두 호숫물에 빠져 죽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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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어렸을 적에 옆 집에 의사 엄마가 있었어요. 학교 1년 후배인데 하루에 학원 다섯 군데를 직접 운전하면서 차에 태워서 돌리더라고요. 저보고도 같이 해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어요. 저도 막상 옆집에서 차로 돌리니까 불안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참여를 안 하니까 삐쳐서 이사를 가더군요. 내 아이의 문제로 다가오면 쉽지 않은 문제로 변하지요. 그렇지만 결과는 어떨까요?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기고 지는 패러다임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협력을 통해 경쟁을 줄일 수 있어요. 문제는 ‘죄수의 번민’입니다.
사교육에 있어서 남이 뭔가 할 것 같으니 나도 뭔가 해야 손해를 안볼 것 같은데, 이건 레밍(나그네쥐)처럼 이유도 모른 채 결국 무리를 따라 달려가는 셈이죠. 호숫물에 모두 뛰어들어 빠져 죽는 거예요. 대부분의 교육전문가들이 사교육은 효과가 없다는데도 왜 다 시키느냐? 혼자는 불안한 거죠. 미국에서 정말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사교육을 받거나 사립학교에 다녔던 사람이 별로 없어요.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시설 공립학교를 다녔고 주립대 나왔어요. 앞으로의 경쟁력은 사교육으로는 절대 길러질 수 없어요.
21세기에는 진짜 경쟁력 있는 사람들, 창의력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게 됩니다. 사교육은 절대 창의력을 기르지 못합니다.
소통으로 합의를 하면 모두가 이기게 되지만, 내가 좀더 앞서겠다는 ‘배신의 열매’는 너무 달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죠. 이렇게 배신하는 사람들, 편법을 써서라도 자신만의 이익을 찾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벌칙을 주면 됩니다. 그럼 누가요? 시민사회가 성숙해지기 전에는 정부가 벌칙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학원에 안 보내는 엄마가 왕따를 당하잖아요. 이걸 봐도 우리의 교육 현실은 민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에요. 과도한 사교육은 정부가 막아야죠.
정부와 언론은 교육에서도 자율과 경쟁을 그저 좋은 것으로만 이야기하는데요. 물론 교육에서도 경쟁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개발한 후에 시키는 경쟁이에요. 대학생은 경쟁을 시켜야해요. 대학도 반드시 경쟁을 시켜야 하고요. 하지만 초·중학생들에게는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고등학생들은 제한된 경쟁만을 합니다.
또한 미국의 대학은 점수대별로 다양한 아이들을 선발합니다. 이게 다양성의 정신입니다. 다양한 성적 대의 아이들을 뽑는 또 다른 이유는 결국 SAT 점수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1200점 맞은 아이는 부잣집에서 1600점 맞은 아이와 같은 기회를 줘야죠. 그게 공정한 게임입니다.
결국 죄수의 번민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해요. 버스전용차선제도를 위반한 차량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서 제재를 하면서 왜 사교육을 조장하는 사람이나 불건전한 사학, 우리 교육을 망치고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놔둡니까?
정책뿐만이 아니라 문화에도 문제가 있어요. 우리는 사실 공부의 목표가 과거를 통해 출세하는 것에 있었거든요.
우리가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 이를 테면 학벌이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깨지 못한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지요. 저는 결국 아이를 키우는데 민주주의적 문화를 토양으로 삼는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엄마, 교사, 정부의 힘만으로 안돼요. 전 인터넷 덕분에 오히려 빠르게 공동체를 형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이버 커뮤니티 가운데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큰 힘을 쌓고 있는 곳도 많거든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교육을 위해 공동체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단체 홈페이지:noworry.kr)
<조기숙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리 | 최민영기자 min@kyunghyang.com>
출처: 경향신문(2008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