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편입시험에서 영어 뺀 건국대

리첫 2008. 12. 30. 22:30

[기고]편입시험에서 영어 뺀 건국대

 신동일 | 중앙대학교 교수·영어영문학
  • 댓글 0

  • 2
  • 0
건국대학교가 참 잘했다. 내년도 전반기 편입학 전형에서 대학 자체적으로 준비하던 영어필기시험을 제외시킨 것이다.

1단계 서류전형에서 5배수를 선발하고 2단계에서 서류와 면접, 실기로 편입생을 선발하겠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편입의 동기, 학업과 진로 계획서를 검토하고 심층면접 방법으로 입시전형을 한다는 건 대학 입장에서는 참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다.

교수님 몇 명이 지난해 기출문제를 참조해 영어필기시험을 준비하고 대학은 시험성적순으로 편입학 입시를 관리하는 일이 훨씬 편리하다.

사실은 주관적인 판단이 너무나 많이 개입된, 그러나 객관식 시험이라고 포장된 필기시험의 그물은 지원자들의 역량과 꿈을 낚을 수 없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안다. 알지만 불편하니까 넘어간 것이다.

영어로 적힌 원서를 빨리 읽는 것이 대학수학능력의 한 단면이고 그래서 영어필기시험이 꼭 필요하다고 하자. 하지만 대학에서 학과와 전공에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영어필기시험을 편입학 지원자에게 부과하는 건 분명 무리가 있다. 영어필기시험이 그만큼 중요하기보다는 입시행정을 획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행정 관행이었다.

전공 관계없이 영어시험 관행

영어필기시험의 비중이 높아진 반면, 대학들은 필기시험의 신뢰성과 타당성 확보에 정성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험에 관한 지침은 구체적이지 않았고 난이도와 시험내용도 들쑥날쑥했다. 편입학 지원자들이 사교육기관에서 필기시험 준비에 전전긍긍하게 된 책임을 대학이 져야만 했다. 편입학 수험생들은 영어필기시험 준비에 매달려야 했다. 편입학 후에 그들은 또 다른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편입학에 관한 그들의 고민과 불평에 대학은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최근 대학마다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중에 대학은 신입생 입시전형을 독립적으로 운영해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대학들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좋은 학생들을 알아보고 선발할 수 있는 역량과 열정이 있을까? 지금 당장 대학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학생들을 뽑을 때 여전히 객관적이라는 필기시험, 공인을 받았다는 외부시험 성적에만 의존할 뿐, 다양한 측면에서 학업성취도나 잠재력을 전문적으로 판단할 전문가 집단을 육성하지 않는다면, 그 대학의 자율적인 평가권은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건국대학교의 편입학 전형에서처럼 수학능력, 학업성취도, 영어능력, 리더십, 재능 등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노력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대학에서 주관하는 필기시험을 모두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누가 누구를 어떻게 왜 뽑는지에 대해 대학이나 해당 전공분야에서 고민해야 하고 그 내용이 시험개발의 지침에 반영되어야 한다. 필기시험이 사용된다면 더욱 구체적인 시험정보가 외부에 공개되어야 한다. 정보가 문서로 남고 외부와 공유된다는 것은 큰 행정적 부담이다. 그래도 모든 교육선진국은 이러한 기록의 행정을 감당하고 있다.

대학이 학부 신입생 선발에 역량을 너무 집중하다 보니 편입학, 교환학생, 장학생, 대학원 등과 관련된 선발, 배치 등의 판단 절차가 대체로 행정편의적일 때가 많다.

대학은 사람 뽑는 지침과 과정에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입학사정관의 역할을 할 사람들의 교육과 전문성에 학교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 점수와 관행이 아니라 사람 알아보는 전문가와 그걸 알아보게 하는 입시전형이 대학의 경쟁력을 갖게 해주고 국가의 비전을 감당할 인재를 선발하게 한다.

행정편의적인 입시전형 철폐

나는 경쟁과 자율의 슬로건에 부담을 갖지 않는다. 그럴 때라고 본다. 하지만 필기시험, 행정편의적인 입시전형의 관행을 끊지 않고는 경쟁과 자율의 대학문화는 세워지지 않는다.

이제 대학은 고통과 불편을 감수하는 입학전형을 선택해야 한다. 건국대학교의 선언이 이제 다른 대학, 다른 입시전형에도 선한 부담감이 되면 좋겠다. 영어필기시험으로 지원자를 선발하고 배치하는 행정편의적 관행은 대학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신동일 | 중앙대학교 교수·영어영문학>

출처: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