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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토양없으면 과학 발전도 없다”

리첫 2008. 12. 31. 13:56

“인문 토양없으면 과학 발전도 없다”
재미과학자 강성종 박사, 국내 과학계 문제 지적한 책 출간
“영어 대신 역사·수학 몰입교육해야…정치에 휘둘려선 안돼”
한겨레 오철우 기자

» 강성종(71) 박사
“철학·예술·문학이 발달하지 않고서 과학기술만 발달한 나라는 없습니다. 인문의 황무지에 과학자만 모아놓는다고 해서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는 없지요.” “교육을 먼저 개혁해야 합니다. 사립대를 국유화해 등록금을 점차 폐지하고, 영어 몰입 교육이 아니라 수학과 역사에 몰입하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재미 원로과학자 강성종(71·사진) 박사가 한국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사회를 아우르는 교육과 정책의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일침’의 제안을 담아 최근 <한국 과학기술 백년대계를 말한다>(라이프사이언스 펴냄)라는 책을 냈다. 강 박사는 지난 19일과 28일 전화·전자우편으로 한 인터뷰에서 “일본 식민지 잔재와 조국의 분단, 그리고 정치인의 횡포가 한국 사회와 과학기술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과학기술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해 한국 사회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강 박사는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 과학자다. 스스로 나서 밝히지 않은 그의 과학자 경력은 화려하다. 1960년 독일에 건너가 63년 화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9~70년 한국인으론 거의 처음으로 <네이처>에 두 차례 논문(제1저자)을 냈다. “64년 독일을 방문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 ‘조국 발전에 공헌해 달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참여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미국 뉴욕시립대 의대 교수로 오래 일했으며 70년대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도 지냈다. 지금은 은퇴해 84년에 차린 연구개발회사에서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그는 독일·미국·중국에서 겪은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과학기술이 이젠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과학기술 정책은 바뀌지 않도록 민간이 주도하는 과학정책위원회가 백년대계를 짜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원회엔 과학자뿐 아니라 사회학자·예술가·노동운동가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또 “과학자가 정치인에 아양 떨며 이권이나 챙기는 현실에서 벗어나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며 “이공계 출신의 중국 지도자나 대처 전 영국 수상처럼 지방 정치부터 훈련을 쌓으며 참여하면 사회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도 지식인으로서 비정규직 같은 사회적 약자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적을 지닌 강 박사는 과학자로는 독특하게 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 불교계와 인연을 맺어 해마다 한두 차례 한국을 찾고 있다.

 

오철우 기자, 사진 법성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