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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멸시와 불신의 뿌리'

리첫 2009. 1. 3. 18:20

일본인의 조선관, 조선인의 일본관

 

8세기 일본 고서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진구황후의 삼한정벌'에 대한 기록이 있다. 물론 연대조차 맞지 않는 기록이라 신빙성은 없다. 하지만 <일본인의 조선관>과 <조선인의 일본과>의 지은이는 진구황후 이야기가 일본인이 가진 한반도 인식의 뿌리깊은 속내라고 말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대 사적을 기록한 <무가사기>는 "조선이 본조의 속국임은 옛 진구황후가 삼한을 정복한 이래 명백하다"고 적었다. 조선통신사도 요즘 한-일 우호교류의 상징으로 부각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이 점은 조선통신사에 대한 예우를 낮출 것을 주장해 관철했던 아라이 하쿠세키(あらい はくせき)의 인식에서 읽을 수 있다. 아라이는 '조선은 군사력으로는 일본에 미치지 않기 때문에, 문화적 우위를 내세운다'며 반감을 드러냈다.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이들 상당수는 일본이 뻗어나가기 위해서 먼저 조선을 삼켜야 한다는 '정한론'을 주장했다. 조선인은 교활하며 독립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일본인의 한반도관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멸시'다. 가끔 터져나오는 일본 고위 정치인 망언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그렇다면 조선인의 일본관은 무엇일까. '불신'이 아닐까.

 

일본은 청일전쟁 때는 '조선의 독립', 러일전쟁 때는 '극동의 평화', 태평양전쟁에 이르러서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수사를 사용해 상대를 속여왔다. 지은이(금병동)는 일본의 총련계 조선대 교수를 지냈고,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 등에 애썼으며 최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