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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미국식 교육을 아느냐?

리첫 2009. 1. 6. 14:20

[야!한국사회] 너희가 미국식 교육을 아느냐? / 이범
한겨레

» 이범 교육평론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대학 관계자들이 ‘선진국 대학은 학생선발을 자율적으로 하기에 경쟁력이 높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떠들어댔다. 그런데 이건 거짓말이다. 이들의 말이 맞다면, 대학이 평준화되어 일정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입학시키는 유럽 대학들의 경쟁력은 한국보다 한참 떨어져야 맞지 않은가? 미국으로 한정해도 말이 안 된다. 미국 대학의 다수를 점하는 주립대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구체적인 선발업무는 대학 소속의 입학 사정관이 수행하지만) 선발방식의 뼈대는 대학과 지방정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결정한다. 결국 한국 대학의 앵무새 같은 주장은, 서울대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미국의 많은 주립대들의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사립대는 학생선발이 자율적이다. 앵무새들은 이것이 부러운 모양이지만, 외고생의 수능·토플 성적을 그토록 편애하는 걸 보니 애석하게도 미국 명문 사립대의 ‘철학’은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 미국 대학은 학생을 성적순으로 뽑지 않고 ‘총체적 됨됨이’를 따진다. 미국의 대학입학 사정관들은 성적(SAT·AP와 내신) 이외에 ‘개인적 특성’이라고 통칭되는 다양한 비(非)성적 요인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다 보니 선발 기준이 ‘성적순’에서 크게 벗어나게 되고, 학생들은 자연히 공부 이외에 예체능·봉사·각종 단체활동 등에 열심이다. 한국처럼 시간때우기 수준이 결코 아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미국에서 명문대 진학하는 학생들이 고교시절 공부와 기타 활동에 쓰는 시간 비율은 50 대 50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아마 100 대 0에 수렴할 텐데 말이다.

 

앵무새들이 툭하면 본고사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본고사나 논술고사를 치르는가? 미국 수능(SAT)에 ‘에세이’가 있긴 하지만 한국의 논술고사에 비해 난이도와 분량이 크게 못미치는 기본 작문능력 테스트일 뿐이다. 한국의 논술성적에 해당하는 기능을 하는 것은 놀랍게도 미국의 내신성적이다. 학교수업이 주입식에서 벗어난 탐구형·토론형인데다, 일상적으로 요구받는 숙제가 에세이 쓰기이고 시험문제가 논술형이기 때문이다. 대입에서 내신성적이 다른 성적(SAT·AP)에 필적하는 중요도를 가지지만, 학교교육이 이런 식이다 보니 한국과 달리 내신성적을 챙겨주는 학원이 없다. 앵무새들이 진정으로 미국식 교육을 원한다면, 본고사 운운하며 국민을 협박할 게 아니라 중고교 학교교육과 수능제도를 미국식으로 개혁하자고 주장해야 맞다.

 

사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제도는 미국식보다는 유럽식일 것이다. 입시지옥뿐만 아니라 등록금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식 제도라 해도, 진짜 미국처럼만 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 대학의 앵무새들은 미국식 제도를 호도한다. 왜 그럴까? 앵무새들은 대체로 미국 유학파이지만, 미국에서 대학원만 나왔을 뿐이고 중고등학교나 대학(학부) 입학과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게 미국식이 아니라 정확히 일본식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교육의 특성은 앵무새들이 아니라 조기유학 어린 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한국에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대학의 앵무새들은 ‘자율’ 자체가 철학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율이 ‘지맘대로’를 뜻한다면 그것이 철학의 지위를 가질 리 없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기회’나 ‘다양성’, ‘헌신성’ 등에 버금가는 한국 명문대들의 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이범 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