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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는 스타선수? 우린 안받아!

리첫 2009. 1. 31. 15:58

'국보급 투수' 선동열은 고려대학교를, '무쇠팔' 최동원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두 선수가 졸업한 고려대와 연세대는 우리나라 양대 '명문' 사학이다. 공부를 잘 해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다.

 

그런데 고려대와 연세대는 선동열과 최동원을 스카우트하려고 할 때 이들 두 선수의 방어율, 승률, 자책점, 탈삼진, 사사구, 도루 허용 따위의 선수로서의 기록 외에 고등학교에서의 성적, 학교생활 등도 따져 보면서 스카우트를 결정했을까.

 

운동선수, 운동만 잘하면 된다?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 하면 되지 학과 성적이 뭐가 중요하냐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운동만 잘 하면 되는 건 그것이 바로 운동선수들의 주 임무이기 때문이고, 공부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건 이들 운동선수들이 평생 운동만 하면서 사는 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지적인 소양을 길러줘야 하는 게 인간적이라는 생각에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운동선수의 '최저 학력제'도 알고 보면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어보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본 어느 운동선수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현재 고 1인 OO선수입니다. 아직 특기자 해제가 안 된 상황입니다. 저는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안 좋아서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는데요. 제가 운동을 시작한 것은 중1 때였습니다. 그리고 2학년, 3학년이 될 때까지 여름방학, 겨울방학 할 것 없이 365일 훈련만 했습니다. 또, 저녁에도 늦게까지 훈련을 했고요.

 

당연히 집에 와서는 공부는커녕 책도 하나 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했던 건 오직 컴퓨터게임이었습니다. 보통 8시간 이상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제 고민은 운동을 그만 두고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책이 없습니다. 학교 교과서가. 시합 갔다 와서 제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책이 모두 없어져 버렸더군요. 책이 없을 뿐 아니라 운동을 시작한 중1때부터 공부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서…(후략)."

 

운동 시작하면서 공부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는 딱한 사연을 읽고 있노라니 문득 기자가 경험했던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의 학교생활이 떠오른다. 잠시 소개해 보자면.

 

늘 비어있던 학생 운동선수 책상

 

대학을 졸업한 뒤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 학교는 OO 종목에서 국가대표 선수도 배출하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배출한 학교였다. 그런데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가면 늘 비어 있는 자리가 있었다. 결석한 학생 자리인 줄 알았다. 그래서 결석을 체크하려고 출석부를 펴면 앞에 앉은 학생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운동선수예요."

'그래서?'

 

나중에 운동부 감독을 만나 이들 선수들의 수업 불참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니 이렇게 말했다.

 

"오전 수업이라도 들어가라고 말해요. 하지만 워낙 피곤해 하니까 좀 봐주세요."

 

어쩌다 교실에 들어온 학생 선수들은 교복 대신 늘 운동복 차림이었고 와서도 졸거나 엎드려 잠을 잤다. 부실한 건 수업뿐만이 아니었다. 시험을 볼 때도 이들 운동선수들은 시험지를 받자마자 나가기 일쑤였다. 이들이 낸 답안지에는 문제풀이 대신 이름과 'OO부'라는 자신의 소속만이 적혀 있었다. 

 

공부 못하는 스타 플레이어? 우리 학교는 안 받아

 

  
알렉스 오와는 <데일리 뉴스레코드> 스포츠면에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스타다.
ⓒ Rivals.com
오와

사설이 좀 길었지만 기자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공부를 못한 어느 유명한 풋볼 선수 이야기다. 화제의 주인공은 미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 고등학교(HHS) 12학년인 러닝백(RB) 알렉스 오와(Alex Owah). 그는 졸업반인 12학년이 되기 훨씬 전부터 많은 대학에서 스카우트 요청을 받았던 스타 플레이어다.

 

오와는 이 지역 일간지인 <데일리뉴스 레코드(DNR)> 스포츠면에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초고교급 스타다. 경기장에서 풋볼을 중계하는 장내 아나운서 입에서도 그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이고.

 

처음 오와의 경기를 지켜봤던 기자는 환상적인 스피드로(100m를 10.89초에 달리는 단거리 선수이기도 하다) 다른 선수들을 가볍게 제치고 터치다운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풋볼에 매료되어 오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곤 했다. 

 

실제로 그는 2006년에 '고교 풋볼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Best of the Best)'로 뽑혔고, 2007년에는 해리슨버그시와 라킹햄 카운티를 합친 지역에서 '올해의 선수(Player of the Year)'로 뽑히기도 했던 스타 중의 스타였다.

 

스포츠 전문 사이트 Rivals.com과 Scouts Inc.에서는 그를 미국 전체에서 62번째 러닝백으로 등수를 매겼고 그에게 별 다섯 개 가운데 세 개를 주기도 했다. 이렇게 두각을 나타냈던 오와는 일찍이 여러 대학의 스카우트 표적이 되었고 11학년이던 2007년 말, 그에게 콜을 보낸 많은 대학 가운데 버지니아 대학(UVA)으로 간다는 발표가 나왔다.

 

UVA는 2008년 <USA 투데이>와 <프린스턴 리뷰>가 뽑은 명문 100대 대학 가운데 공립으로는 1위에 오른 아주 좋은 대학이다. 바로 그 대학으로 오와가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최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알렉스 오와의 UVA행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이다. 왜냐고? 학과 성적이 낮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DNR이 전하는 내용이다.

 

"알렉스 오와는 대학에 가서도 훌륭한 선수로 남기를 원한다. 하지만 UVA에서는 아니다. HHS 졸업반인 오와는 작년 시즌을 마친 뒤 가기로 결정했던 UVA에 못 가게 되었다. 이유는 이 대학이 요구하는 학과 성적에 못 미쳤기 때문."

 

오와는 이미 11학년 때 UVA를 비롯한 버지니아텍, 웨이크 포리스트, 테네시, 웨스트 버지니아(이상 1부 리그)와 2부 리그인 제임스매디슨 등에서 장학금 제의도 받았다. UVA행이 좌절된 뒤 오와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대학체육협회(NCAA)가 요구하는 1부 리그 조건을 만족시킨다 해도 현재로서는 SAT(우리나라 수능에 해당하는 시험) 점수도 올려야 하고 재수강 과목도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UVA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UVA로 결정하기 전에 내게 관심을 보였던 다른 대학으로 진학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코네티컷, 마샬,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등이 오와의 UVA행 좌절 소식을 듣고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각3회면 징계... 운동선수라고 봐주는 법은 없다

 

  
'Rivals.com'에 실린 오와 관련 최근 기사. UVA에 가기로 했던 오와가 다시 스카우트 시장에 나왔다는 내용이다.
ⓒ Rivals.com
오와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땠을까. 이렇게 뛰어난 선수를 스카우트하는데 학과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스카우트를 취소하는 대학이 있었을까.

 

이번 알렉스 오와 사태를 보면서 기자는 학원 스포츠와 관련하여 HHS 풋볼 감독인 팀 사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NCAA가 요구하는 선수들의 기본 성적은 어떻게 되나.

"NCAA에서는 학과성적(GPA) 평균 2.5점, SAT 820점을 요구한다. 모든 대학들이 이 조건을 요구하지만 다소 융통성은 있다. 즉 SAT 점수가 높으면 GPA가 다소 낮아도 된다. 현재 오와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오와의 UVA 입학 좌절은 UVA가 다른 대학보다 조금 더 엄격한 성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는 고교 운동선수들이 수업을 빠지는 일이 많다. 감독도 이를 알고 있지만 엘리트 스포츠의 '성적지상주의'에 얽매여 이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HHS에서는 운동선수들의 수업 출석에 대해 어떤 규칙을 적용하고 있는가. 또 수업에 빠졌을 경우 어떤 벌칙이 가해지는가.

"우리 학교에서는 선수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지각을 세 번 하게 되면 징계를 준다. 또한 정당한 이유 없이 결석을 하게 되면 교장선생님이 연습을 못하게 한다. 연습에 빠진 선수들은 감독인 내가 벌을 주는데 대개 운동장을 도는 벌을 주고 있다."

 

- 운동선수들의 성적 관리와 학교생활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을 요구하고 있는가.

"모든 선수들은 학교에서 요구하고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수강하고 있는 네 개의 과목 가운데 적어도 세 과목에서 학점을 취득해야 한다. 나는 우리 선수들이 학교생활에 있어서도 모범 학생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즉, 좋은 운동선수일 뿐 아니라 좋은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만약 선수들이 학과목에서 학점을 취득하지 못하면 운동부에서 나가야 한다."

 

공부 안 하려면 운동 그만 둬!

 

  
오와가 나오는 경기는 거의 승리한다. 경기가 끝난 뒤 관중들이 기뻐서 운동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 한나영
풋볼

이번 오와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와서 놀란 것 가운데 하나는 공부를 잘 하는 운동선수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 말을 들어봐도 이곳 운동선수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연습하느라, 또는 피곤하기 때문에 수업을 빠지거나 시험을 안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경기도 방과 후나 저녁에 하는 게 보통이고.

 

팀 사버 감독도 말했지만 이곳에서는 출석만큼은 확실하게 해야 하고 선수들의 연습 역시 철저하게 방과 후에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수업을 많이 빠지거나 성적이 나쁜 학생은 소속된 운동부에서 방출되기도 한다.

 

이런 원칙 아래 모범적인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을 예로 든다면 바로 팀사버 감독의 아들인 벤 사버다. 지난 2007년에 HHS를 졸업한 벤은 재학중에 야구 1번 타자로, 풋볼에서는 탁월한 쿼터백으로 많은 상을 받았던 훌륭한 선수다.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명문 리버럴아트 컬리지인 '데이비드슨'에서 풋볼을 계속하고 있는데 올 봄 학기에는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고 한다.

 

버지니아 주 고등학교 리그인 VHSL(Virginia High School League)에는 운동부와 운동선수들을 위한 241페이지짜리 핸드북이 있다. 여기에는 선수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종의 선수들을 위한 가이드북인데 49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운동선수는 만족할 만한 성적을 유지하고 (운동 외) 다른 학교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거나 도와줌으로써 학교에 대한 충실도를 보여줘야 한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들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