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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연"은 외부세력, "용역깡패"는 내부세력 맞다

리첫 2009. 2. 1. 12:52

"전철연"은 외부세력, 용역은 내부세력 맞다

[김민웅 칼럼]<32> 국가권력의 테러 앞에서

기사입력 2009-01-27 오후 12:32:33

가난한 사람 돕지 마라, 외부세력 된다

이 나라에서는 억울하고 힘든 지경에 있는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하는 일을 도우면 안 된다.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끼리 힘을 합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억지떼를 써서 난리를 펴는 "떼 잡이" 소동이 된다. 강도 만나 죽을 지경이 된 사람을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은 징벌대상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제3자 개입이고, "외부세력"의 준동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공권력은 제3자 개입과 외부세력에 대해 엄단하고 있으니 남이 무슨 일을 당하든 괜히 다치지 않으려면, "나 몰라라" 해야 한다. 아무리 동조하고 싶어도 못 본 척 해야 한다.

그렇게 냉혹한 사회가 되는 일에 기여하면 할수록 국가권력은 매우 기뻐한다. 이런 국가 권력이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엄청난 착각이다. 그런 국가권력은 더 이상 정상적인 국가의 힘이 아니다. 다섯 명의 철거민들을 처참하게 죽게 하고 나서 변명으로 일관하고 사건의 진실을 계속 은폐하려는 행위는 국가이기를 포기한 모습이다. 우리에게 지금 최대의 숙제는 명백한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집단이 되어가는 국가권력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이다.

사람이 다섯이나 죽었는데 '공무집행하다 접시 깨는 것'쯤이야?

용산 철거민을 비난하면서 특공대 진압을 옹호하는 어떤 자는 라디오 토론방송에 나와서, "공무를 집행하다가 접시를 깨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그것도 인간의 말이라고 주절거렸다. 이 말을 하면서 그 자는 대통령 이명박도 이미 공무원들의 공무집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힘을 실어준 바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목숨이 희생된 것을 공무를 추진하다가 깨져도 되는 접시로 보는 자들이 저토록 목소리를 높이고 당당하다면 무서운 일이다.

철거민 가운데 죽은 사람들은 안타깝네, 애도하네 뭐네 하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도심테러 운운으로 졸지에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있는 자들의 입이 바로 도심 테러다. 우린 지금 집권세력과 국가권력의 테러에 직면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공권력의 위상을 갖지 않아도 가난한 사람들을 공격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진압하며 언론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에 나서면 그건 "내부세력"이다. 내부세력은 공권력의 지원과 협력을 보장받는다. 내부세력을 다르게 표현하면, "지네들끼리"라는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한 통속"이라는 말도 있다. 이번 용산 참사를 보면, 이 "지네들끼리"가 어떤 자들을 포함하는, 또는 "한 통속"이 누구인지 드러난다. 이들은 서로 조직적인 관계를 가지고 그에 기초한 행동도 한다.

내부세력 연대, 한통속 정치

현장에서 철거민들을 윽박지른 철거용역은 그곳 땅 부자, 건물 부자들이 조합이라는 이름 아래 고용했다. 철거용역과 부자들은 한 편이 되어야 세입자들을 거지처럼 만들어 몰아낼 수 있다. 그 철거용역이 경찰과 합동작전을 폈다. 아니 경찰이 철거용역과 합동 작전을 폈다. 아니, 그게 그거다. 부자와 경찰과 철거용역은 이렇게 해서 다정한 "지네들끼리"가 된다. 부자들의 뉴타운 식 재개발 정책은 권력자들이 돕는다, 또는 선도한다. 부자들이 권력자들에게 무엇을 건네주는지는 조사해봐야 자세히 알겠지만, 권력자들은 부자들에게 경찰을 내준다. "한 통속"은 이렇게 해서 완성된다.

우린 그 한 통속의 면면을 지금 보고 있다. 자, 경찰은 깡패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용역이 철거민들에게 폐타이어를 태워 독성 연기를 마시게 하는 등 깡패 짓 하게 내버려 둔다. 깡패 짓 하는 용역이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미리 짜고 친 내부세력이기 때문이다. 드러난 무선교신은 그걸 그대로 입증해주고 있다. 깡패 짓 하게 사주한 자들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지네들끼리"니 잡지 않는다, 또는 못 잡는다.

그런데 깡패 짓 한 용역과 하나가 된 경찰은 누가 잡나? 그 경찰의 총수로 내정되어 용역과 합동작전을 편 특공대 파견을 결정한 사람은 누가 잡나? 그런 결정을 내린 경찰의 총수를 그 자리에 앉히고 싶어 하는 권력은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외부세력 연대, 누가 부추기나?

책임전가와 진상 은폐를 위해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 때려잡기"로 문제를 덮고 싶어 하는 권력, 보수라는 이름을 걸쳐 입고 사실은 잔혹한 품성을 가진 수구언론, 이들과 하나의 몸이 된 냉혈 부자들. 그리고 이들에게 몸을 대주는 용역 철거반과 이들과 합동작전에 몸 사리지 않는 경찰들. 이들이 하나가 되어 "내부세력연대"를 강력히 구축하면서 "지네들끼리의 세상"은 견고하리라 믿을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전철연"을 비롯해 가난하고 힘없는 일반서민들은 "적대해야 할 외부세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외부세력이 이제 하나가 된다. 아니, 이들을 모두 하나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다. 외부세력의 연대와 강력한 투쟁을 부추기는 배후세력은 "한통속 세력"이다. 그렇게 해서 외부세력이 내부세력을 전 방위적으로 포위해가는 맛을 이제 보고 싶어 하려는 걸까? "너희는 포위됐다, 너희는 포위됐다, 완전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나오라." 뭐 이런 대 테러작전 선무방송 듣고 싶은 것일까?

<조선일보>의 지원사격

더욱 가관인 것은 왜 이런 사태가 생겨났는지, 그 본말을 뒤집거나 침묵하면서 희생자들을 가해자로 만들고 문제제기의 사회적 확산을 막기 위해 기괴한 논리를 동원하는 언론들이다. <조선일보>는 "법질서 못 세우는 정부는 자격 없는 정부"라는 제목의 1월 23일자 사설을 통해 철거민들의 저항을 도시게릴라 운운하면서 철거민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국가의 강력 진압을 촉구한다. 누가 또 죽어나가기를 바라는가? 그러면서 돈을 모아 용역을 동원한 자들의 문제는 전혀 제기하지 않고, 철거민들의 망루 장기 투쟁 비용 마련은 맹렬한 비난을 가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또 그 전날인 22일에는 "겁 없는 좌파들, 용산 불행 이용해 촛불 재판 꿈꾸나"라고 하면서 이번 사태의 근본에 대한 고민이나 성찰은 일체 없는 채로 좌파 운운으로 또 다시 색칠장난이나 하고 있다. 권력과 부자들에 대한 <조선일보>의 지원사격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그건 그러나 모두 자기도 모르게 써나가는 언론범죄의 기록이다.

국가권력이 폭력진압을 주도해 국민을 죽게 하는 범죄 집단화되고, 이들과 짝한 언론과 방송도 거짓과 은폐와 왜곡으로 진실을 가리는 범죄 집단이 되고 사설 용역집단과 경찰이 한 몸이 되어 가난한 이들을 공격하고 도처에서 민주주의를 체포하는 일을 벌이며, 검찰과 법정이 이런 범죄를 정당화해주는 일을 맡고 그런 범죄에 국민들이 계속 희생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유린할 때, 주권이란…

"어떤 형태의 정부라도 그 정부가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파괴하게 되는 때에는, 언제든 이런 정부를 바꾸거나 소멸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인민)들의 권리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도 영향을 미친, 근대 민주주의의 정신을 압축한 <미국 독립 선언서(1776년)>의 유명한 대목이다.

이 정신에 따르면, 국민의 일원인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이 국가권력의 테러 앞에서 위협받고,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인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억압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봉쇄되고 있다면 국민들은 어떤 때라도 자신의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헌법 수정조항 1에서 10까지는 "미국의 권리장전"으로 알려져 있는 바,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의회는 만들 수 없게 되어 있음을 골자로 하고 있다. 모두 <독립선언서>의 기본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후 모든 민주국가는 이러한 정신을 보편적으로 따르고 있다.

우리의 헌법 2장 제10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의무를 저버릴 경우, 그건 이미 국가의 헌법적 토대를 상실한 조직이나 집단 내지 개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 정부나 국가를 따를 책임이나 의무는 그로써 원천 소멸된다. 아니 이러한 정부를 바꾸거나 교체하거나 소멸시키는 권리가 새롭게 발생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불온하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불온하다. 권력에게 불온하지 않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국가권력은 늘 민주주의를 진압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독선과 폭력을 거부한다.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를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는 정부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민주주의의 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깊이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라. 진솔하게 사과하라.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모든 독설과 욕설을 사죄하라. 도심 테러 운운한 자들도 모두 머리 숙여라. 무릎을 꿇어라. 그리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폭력적인 재개발 정책을 철회하라. 엉뚱한 사람들을 원인 제공자나 가해자로 몰지 마라.

정히 그럴 수 없다면, 오랜 옛날 갈릴리의 한 청년의 말대로 된다. 가난한 민중들이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현실의 권력자들을 질타하고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환호하자 이를 당대의 지배세력이 억압하려 든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의 입을 막으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document.[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 = initFont();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