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고치는 한의사 강용원 원장
‘통짜 상담’으로 1차 치료, ‘봉사활동’ 처방은 ‘비방’
사회 약자위한 의료봉사 네트워크 만드는 것이 꿈
우울증 고치는 한의사. 서울 서초동 마음향기 한의원 강용원(53) 원장에게 따라다니는 말입니다. 강 원장은 우울증, 불면증, 갱년기 증후군, 심신성외상후 우울증후군 등 마음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드문 한의사입니다. 특히 강 원장처럼 상담을 치료의 주요한 수단으로 쓰는 한의사는 아주 드뭅니다.
아버지의 여자들을 보며 여성의 상처 이해
한의사가 우울증을 치료한다? 모두 뜨악해 합니다. 심지어 동료 한의사들도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한의학이 몸과 함께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마음의 병’만을 대상으로 의술을 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 원장은 3년이 넘는 임상 경험을 통해 한의학이 우울증 등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됨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는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여성의 얼굴에 밝은 웃음을 되찾아 줬고,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하던 이에게 삶의 의욕을 갖게 해줬으며, 성폭행을 당한 뒤 고통받던 여학생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많은 환자가 그를 찾아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강 원장은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을 젠더적 관점에서 상담하는 한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을 ‘비학습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하는 강 원장은 4살 때 부모의 이혼을 겪고, 호적에 어머니로 이름을 올린 6명의 여성, 그밖에 아버지와 동거한 여러 여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봐야했던 할머니 등을 지켜보면서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고 합니다.
강 원장의 치료법은 외형적으로는 서양의학과 비슷합니다.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지만 내용은 한의학과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의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상담이 그렇습니다. 내용은 다릅니다. 강 원장은 “서양 상담이 코스 요리식 장기 세션 상담이라면 우리 상담은 한상차림식 ‘통짜’ 상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서양 상담의 경우 상담자가 피상담자와 분리되어 있고, 상담자가 완전하다는 전제가 있으며, 상담자는 말을 하기 위해 분석하면서 피상담자의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듣기 위해 말을 하고 가슴을 열고 귀를 기울입니다.”
상담 시간에 오지 않아 연락하니 자살 사이트 뒤지고 있어
강 원장은 의사가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치료가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우울증 환자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우울해진다고 합니다. “겁이 덜컥 나고 예약 환자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지만 그는 ‘통짜’ 상담이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의 ‘통짜’ 상담은 파격적인 형식을 띠기도 합니다. 유전적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청년과의 상담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한의원에 다녀간 그 청년은 다음번 약속 시간에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며칠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 원장이 출근해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그 청년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직관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했더니 그 청년은 자살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소주 한 잔 하자고 불러냈어요.” 술자리 상담은 새벽 1시까지 이어졌고 그 청년은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강 원장은 이런 형태의 상담을 ‘난장적 상담’이라고 부릅니다.
강 원장의 독특한 상담은 그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법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뒤 삶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신학, 심리학, 상담학 등을 공부했고, 다른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나이 마흔이 넘은 2000년에 한의대생이 됐습니다. 그의 상담 기법은 20년 가까이 동서양을 오가는 다양한 학문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약물도 씁니다. 한약입니다. 약을 통해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조절하는 연구가 많이 축적된 서양의학과 달리 한약의 관련 연구는 거의 없습니다. 강 원장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약에는 그런 성분이 없을까? 자료를 찾다 중국이 그런 연구를 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번역된 자료가 없어 독학으로 백화문을 익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1950년대에 한약이 신경계, 내분비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중국에서 연구한 자료를 구해 공부하면서 한약이 마음 치료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강 원장은 특별한 처방도 씁니다. 그가 환자들에게 주는 ‘비방’은 봉사활동입니다. 그는 다른 이들을 돕다 보면 환자들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실제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한 환자는 그의 ‘처방’에 따라 기름유출 사고가 난 태안에 봉사를 다녀온 뒤 상태가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상담료 청구하자 사기꾼이라고 펄펄 뛰는 환자도
지금은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지만 2006년 개원 때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동료 한의사를 비롯하여 가까운 이들은 강 원장의 개원 자체를 반대했습니다. 뜻은 좋지만 망한다는 것이었지요.
“강남·서초 같은 지역의 경우 외곽에서 10여 년 이상 돈을 번 의사들이 전국구로 이름을 날리기 위해 망할 것을 각오하고 도전하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한 해에 200여 의료기관이 문을 닫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강남 지역이야말로 제 의술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위의 우려 대로 개원 뒤 1년여 동안 마음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찾는 환자는 드물었습니다. 환자가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한의사의 상담 치료를 이해 못 하는 환자들이었습니다. 어떤 환자는 문진과 상담을 구분하지 못해 1~2시간 상담한 뒤 상담료 10만 원을 청구하자 사기꾼이라며 고발하겠다고 펄펄 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찾아오는 환자도 늘었고, 우울증을 고치는 한의사가 있다는 말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의사가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우리 사회가 한의사를 이렇게 업신여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한의원 경영이 나아지자 강 원장은 요즈음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두세 번 만의 만남으로 치유할 수 있는, 그가 ‘관통치유’라고 일컫는 수준으로 치료 능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또 다른 꿈은 그가 한의대생 때부터 키워온 것입니다. 예과 때부터 해마다 자원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그는 사회안전망 밖에 있는 이들을 위한 의료봉사 전국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 의자(醫者)로서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합니다.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일인 줄 알지만 꿈꾸는 자에게 기회가 열리는 이치를 믿어 보려 합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