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RUBY)족과 노무족(No More Uncle)을 모셔라!’
루비족은 상쾌함(refresh)과 특별함(uncommon), 아름다움(beauty)과 젊음(young)의 영어 앞글자를 딴 신조어로, 자신의 삶을 가꾸는 데 열성적인 중장년 여성층을 일컫는다. 노무족은 외모에 큰 관심을 갖고 더이상 아저씨로 불리길 원치 않는 중장년 남성층을 말한다. 패션, 전자, 화장품, 유통업계가 경쟁적으로 루비족과 노무족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중장년층에는 탄탄한 경제력을 지닌 사람이 많아 요즘 같은 경기침체기에도 상대적으로 소비여력이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패션업계다. 패션업체들이 대부분 매출 감소로 고전을 하고 있지만,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의 출시는 잇따르고 있다. 제일모직은 올봄 중장년층 여성 전용 브랜드인 ‘르베이지’를 선보인다. 형지어패럴도 이달 초 중장년 남성을 겨냥한 캐주얼 ‘아날도 바시니’를 출시했다. 앞서 알에프케이엔(RFKN)은 지난해 8월 시니어 남성 소비자들을 겨냥한 ‘엘파파’를 내놓았다. 이 브랜드는 지금까지 매달 10% 안팎의 매출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형지어패럴 김영만 마케팅본부 이사는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파레토의 법칙’이 중장년층 여성을 타깃으로 한 ‘여성크로커다일’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며 “70%가 넘는 매출을 일으키는 30%의 고객층 대부분이 50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기기업계 역시 ‘액티브 시니어’(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중장년층)의 마음을 뺏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엘지전자가 중장년층을 겨냥한 ‘와인폰’으로 성공을 거두자, 삼성전자도 최근 이 계층을 겨냥한 ‘오리진폰’을 내놓았다. 와인폰은 2007년 첫선을 보인 뒤 현재까지 130만대가 팔렸다. 업계에서 보통 30만~40만대가 팔리면 ‘히트작’으로 여긴다.
게임기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던 시대도 지났다. 한국닌텐도는 두뇌 트레이닝 게임기인 디에스(DS)와 위핏(Wii Fit)을 내놓으면서 중장년층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광고를 제작했다. 아예 중장년 모델을 등장시켜 ‘중장년층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전략이다.
화장품업계에서는 포화상태인 시장의 탈출구를 중장년층이 주로 사는 한방 화장품에서 찾고 있다. 국내 시장점유율 1, 2위인 아모레퍼시픽과 엘지(LG)생활건강은 올해 초 한방 화장품의 성분과 용기 디자인 등을 강화한 상품을 내놓았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전체 화장품 시장 성장은 6% 아래에 머물고 있는 반면, 한방 화장품 매출은 10~20%대의 고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비(KB)투자증권의 김나연 선임연구원은 “중장년층 인구가 더욱 두터워지면서 시니어 전용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도 기업들한테 중장년층 공략 강화를 강조한다. 중장년층 관련 산업을 소개하는 누리집인 ‘시니어 통’의 조연미 대표는 “우리보다 중장년층 시장이 한발 앞선 일본의 경우 상장기업의 70%가 관련 전담 부서가 있을 정도”라며 “시니어 소비자들이 적극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추세인 만큼 이들의 욕구를 세심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장년층은 일자리나 집 마련으로 인한 부채 같은 경제적 불확실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며 “기업들은 이처럼 구매력을 갖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틈새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집계로는, 국내 ‘시니어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02년 12조8천억원에서 2010년 43조9천억원, 2020년에는 148조5천억원으로 급팽창이 예상된다. 직장에선 ‘은퇴 세대’로 취급되는 중장년층이 소비시장에선 어느덧 ‘뜨는 세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정연 윤영미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