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만도 못한 학교? / 이범 | |
야!한국사회 | |
아이가 성적은 높은데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한다는 문의가 점점 더 많아진다. 나의 표준적인 답은 “자퇴시키세요!” 성적이 높은데도 학교에서 탈출할 걸 궁리할 정도라면, 이미 심리적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다. 부모가 억지로 주저앉혔다가 나중에 결과가 좋지 못하면 아이로부터 엄청난 원망을 들어야 한다. 이런 아이들은 대체로 자기관리 능력과 목표의식이 분명해서, 결과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자퇴하겠다고 나선 아이들이 항상 꺼내는 카드가 있다. “인터넷 강의로 공부하면 되잖아요?” 할말이 없다. 인터넷 강의의 혁명적 함의는 교육의 시공간적 제약을 초월했다는 점과 아울러, 학교가 이제 주입식 교육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폭로했다는 점에 있다. 이제 학교는 학생에게 물고기를 먹여주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 돼야 한다.
학교가 학원보다 못하기 때문에 학원으로 몰린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학원처럼 수준별·맞춤형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을 잘하는 교사를 우대하며, 학생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자는 것이다. 몇 가지 주의사항만 지켜진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내용이다. 사교육비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기적 대응책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적어도 우리 교육의 근본적 지향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물고기를 대충 던져주면서 ‘알아서 먹겠지’ 하며 방관하는 지금의 상황에 비한다면, 물고기를 잘 분류하고 요리해서 친절하게 먹여주는 것은 중요한 개선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이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공교육을 살리려면 학교교육을 옹호하고 대입에서 내신 반영비율을 높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학원 강의보다 더 주입식인 학교수업과, 수능보다 더 일차원적인 내신 시험문제들을 보고 나면, 이런 주장에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난다. 지금처럼 엉망인 내신교육에 눈감으면서 ‘공교육 지키기’ 운운하는 건 위선이다.
대안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을 필두로 과목별 교사모임마다, 주입식에서 벗어난 탐구형·토론형 수업콘텐츠를 방대하게 축적해 놓고 있다. 최근에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내신교육 운동을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되려면 국정·검인정 교과서제 폐지, 교사에게 교육과정 편성권의 일부 이양, 교육과정의 간소화, 학년별 평가에서 교사-학급별 평가로의 전환(교사는 자신이 담당한 학급만을 평가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석차 대신 평점을 표기하는 성적표, 탐구형 과제 수행을 돕기 위한 도서관 확충 등이 필요하다. 물론 변화에 대한 저항이 만만찮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해진다면, 인터넷 강의를 들먹이며 자퇴하려는 학생들을 말리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의 교육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학교가 더 잘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 ‘더 잘 가르치는 것’인가?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한다. “학교는 학교 밖에서는 제공받을 수 없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는 이제 인터넷 강의로는 제공받을 수 없는 걸 해줘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학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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