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한다는 의미 ‘말하기’에 무게 실려야” | |
[이주의 교육테마] 인터뷰/SDA삼육외국어학원 박태자 국제언어연구소장 문법·독해·듣기 ‘점수 올리는 영어’로는 한계 어릴때부터 훈련 통해 논리력·창의력 길러야 | |
김창석 기자 | |
토익(T0EIC) 성적이 영어실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높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토익성적에 대한 비중을 점점 낮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토익성적과 ‘진짜 영어실력’은 왜 정비례하지 않을까. 토익 점수가 높다고 영어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된 이유는 뭘까. SDA삼육외국어학원 국제언어연구소 박태자(48) 소장은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기반으로 한 영어 능력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 사회에서 ‘영어 잘한다’는 말의 의미와 그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함께하는 교육>이 그를 만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영어 열풍이 더 세졌다. 영어가 과도하게 강조되는 시대에 살면서 학부모들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영어 교육에 관한 한 갈피를 제대로 잡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데도 한국 학생들이 영어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최근 공인 영어 시험들에서 말하기 능력을 새롭게 측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인가?
“그렇다. 최근 토플시험이나 주한 영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와 서울대에서 개발한 영어능력검정시험(TEPS) 등의 시험에서 문법, 독해, 듣기 외에 영어 말하기 능력을 측정하고 있다. 미국의 언어능력평가기관인 ACTFL(American Council on the Teaching of Foreign Language)의 면대면 인터뷰 시험(Oral Proficiency Interview: OPI)이 도입돼 컴퓨터 기반의 총체적인 영어 말하기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여러 기업이나 교육기관에서 실질적인 영어구사능력을 측정하려고 하는 추세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말하기 능력이라고 해도 좀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말하기 능력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대화 수준의 말하기를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능력을 뜻하는 것인가? “단순 의사소통 수준 이상의 말하기 능력, 즉 논리적 사고력,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최근의 영어 말하기 능력 측정 시험들에서 요구하는 공통점이다. 이런 능력을 요구하는 이유는 비즈니스나 국제관계, 교육 분야에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표현해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확신시키는 능력과 함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내는 창의적인 능력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은 영어 에세이를 쓰는 능력에 준하는 높은 수준의 논리적 사고력,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요구한다. 이 정도의 수준을 말하기를 통해 입증해 보일 때 비로소 ‘영어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도의 수준을 모든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학교 현장에서 그 정도 수준의 말하기 능력을 갖출 수 없다면 결국 사교육에 의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낳을 것 같은데. “학원을 다녀도 입이 안 열리는 학생들은 의외로 많다. 좋은 교재를 가지고 있어도 전근대적인 교수법을 사용한다면 학생들은 입을 열 수 없다. 열심히 강의를 해도 말문을 여는 것은 결국 학생들에게 얼마만큼 훈련시간을 갖게 하느냐, 얼마나 효과적인 교수법을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영어를 재미있고 친숙하게 만드는 교사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논리적 사고력, 창의력, 문제해결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아주 어린 나이부터 훈련되고 길러져야 한다. 인지발달 단계를 보면 ‘전조작기’(Preoperational stage 2~7살)가 있는데 이 단계의 후반부인 5~7살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본다. 영어라는 것도 다른 학습과 마찬가지로 특별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일상의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돼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 교육 선진국들에서는 어려서부터 이런 능력이 가정과 학교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바로 여기에서 한국과 그들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영어를 쓰는 나라들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고전하는 것은 특별히 이런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환경에 노출돼 있지 못하고 암기식 영어, 점수 올리는 영어를 했기 때문이다. 영어 강국이라고 알려진 핀란드에서는 특정한 저녁시간대에 영어로 된 공영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방영해 영어교육의 기회를 만든다고 한다. 가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아직 핀란드와 같은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아동의 인지발달 단계에 맞게 개발된 다양하고 체계적인 영어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영어교육이 좋다는 얘기에는 많은 학부모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것을 일상에 구현해내기가 어렵지 않은가?
“학부모들이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를 아이들의 내면에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래야 평생 영어를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연령에 맞는 학습교재와 학습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단계별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취학 전 5~7살 어린이들로부터 중등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인지 수준에 따른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SDA삼육외국어학원이 운영중인 프로그램들처럼 교사와 학생 사이의 면대면 회화, 전화를 통한 회화, 영상 회화 프로그램 등 학습 대상의 처지와 조건에 맞춰 다양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5~7살 어린이들은 영어를 ‘학습’(Learn)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습득’(Acquire)하는 환경에 노출되는 경험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들로 가득한 영어도서관에 가는 것이 즐겁다면 굳이 영어공부를 하라고 강조하지 않더라도 영어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시험 위주의 영어교육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대책이 있을까?
“영어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제 영어 잘한다는 것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인재로 키우려면 어려서부터 다양한 훈련을 통해 길러진 논리력,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이 영어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또 효과적인 영어교육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인지발달 단계에 따른 차별화되고 체계적인 영어 프로그램에 노출시켜야 한다. 취학 전과 마찬가지로 취학 후에도 아이의 적성이나 수준에 맞춰 독서나 면대면 회화 프로그램, 전화영어 등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사교육을 활용할 여유가 있다면 이런 프로그램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전통 있는 교육기관을 골라야 한다.
어차피 영어도 언어인 만큼 일정한 시간 이상을 할애하지 않을 경우 실력이 늘어나지 않는다. 강압적이고 주입식이 아닌 다양한 질문을 활용해 여러 이야기나 상황을 설정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대답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해줘야 한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논리적, 비판적,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실생활에서 영어 말하기에 응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영어와 자연스럽게 친숙하게 되고 영어의 기본인 듣기부터 시작해 말하기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글·사진 김창석 기자 kimcs@hanedu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