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어려운 지식도 그림 그려 쉽게 이해하죠”

리첫 2009. 3. 9. 15:45

“어려운 지식도 그림 그려 쉽게 이해하죠”
교과목마다 스케치북 마련
중심생각-관련내용 구조화
오랜시간 꾸준히 해야 성과
한겨레 김청연 기자

» 박승민양이 겨울방학 때 그린 아프리카의 생활사 마인드맵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창의적 인재가 말한다 /
‘마인드맵’으로 공부하는 박승민 양

 

“네, 할 수 있어요. 조금 기다려주세요.”

“지금 보여주는 칼럼을 읽고, 마인드맵으로 그려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 박승민(13·서초중)양이 머뭇거림 없이 대답한다. 밑줄을 그으며 칼럼을 읽고, 스케치북을 펼친 지 40분이 지났을까? 승민양이 “다 했다”며 스케치북을 펼쳤다. 스케치북 한 가운데에는 악마처럼 생긴 눈이 빨간 생명체가 파란 생명체를 짓밟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빨간 생명체의 이름은 ‘학원’, 파란 생명체의 이름은 ‘학교’이고, 그 배경엔 ‘사회’란 단어가 적혀 있다. 이 그림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가지들 옆에도 다양한 단어들이 적혀 있다. “‘I’m 진보적!(×)’이란 표시는요. 우리가 흔히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학원 교육에 매달리고 있단 의미예요.” 유독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어 물어보자 승민양이 그림을 보며 설명했다. 2009년 3월9일치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가운데 김규항씨(<고래가 그랬어> 편집인>)가 쓴 ‘한 사회를 끝장내는 교육’을 읽고 그린 ‘박승민표 마인드맵’이다.

» 승민양이 인터뷰 당시 <한겨레 21>에 실린 칼럼을 읽고 그린 마인드맵이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간 승민양의 노트는 다른 학생들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글씨만 적은 노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과목별로 스케치북으로 된 노트가 따로 있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은 이 스케치북 노트에 마인드맵을 그려가며 공부해왔다.

 

1971년 영국의 토니 부잔이 시작한 마인드맵(한국에는 ‘부잔코리아’란 이름으로 들어와 있다.)은 기계적 암기 학습에서 벗어나 어떤 지역의 약도를 종이에 그리는 것처럼 정보를 정리해나가는 방법이다.

 

그동안 승민양은 주로 ‘예습’을 할 때 마인드맵을 적절히 활용해왔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 배울 것들을 혼자 예습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교육방송의 무료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이를 ‘글맵’(목차 형식으로 내용을 구조화해 정리하는 것)으로 정리한 다음, 이를 그림과 기호 등이 들어간 마인드맵으로 그리면 된다. 마인드맵을 그릴 땐 주제가 되는 중심그림을 가운데 놓고, 여기서 뻗어 나오는 정보나 생각들을 가지치기 형식으로 그리면 된다. 승민 양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개념이 외워지고, 흐름도 정리가 된다”고 했다.

 

승민양이 마인드맵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어머니 임성연(41)씨가 “달달 외우는 공부 말고, 재미있는 공부 방법을 찾아주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 무렵, 이웃에서 마인드맵 스쿨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승민양은 “처음엔 그냥 미술을 하러 가는 것 같았다”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나무, 물고기 등 단어를 놓고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마인드맵을 하면서 재밌는 변화들이 나타났다. 우선, 낮게 나오던 창의성 지수가 높아졌다. 단답형의 암기식 공부보단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만의 문제해결 방법을 찾는 데 열중하는 재미도 느끼게 됐다. 어머니 임씨는 “승민이가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맞다고 하는 답이 아니라 다른 답을 선택한 적이 있었다”며 “백과사전이며 다 뒤져보니 그건 승민이보다 높은 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이고, 승민이 답도 맞는 부분이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엠에스오(Mind Sports Olympiad) 대회 마인드맵 종목에서 초·중·고등학교 대표로 문화관광부 장관상도 받았다. “시간이 부족해서 색칠 마무리를 못 했거든요. 속상해하며 그냥 돌아왔는데 뜻밖에 연락이 왔어요. 1등이라고. 이유는 다른 학생들보다 구조화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어머니 임씨는 드러난 수상기록보다 승민양이 능동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인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손꼽는다. 임씨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즐겁게 하루 한두 시간 이상을 마인드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즐거워 보인다”고 했다. 오랜 시간 붙잡고 있을 땐 이제 그만 치우라고 말한 적도 있었지만 6년여 동안 딸의 마인드맵 학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마인드맵은 ‘기다림의 학습’이라는 것이다. “전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리다 말고 백과사전을 찾아서 뜻, 개념 등을 알아본 다음 다시 그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참 오래 걸렸죠. 대부분의 부모님이 빠른 결과를 생각하시죠. 근데 공부를 잘하기 위해 마인드맵을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냥 이런 활동이 아이에게 도움을 주긴 줄 텐데 꾸준히 해보면서 기다려보자는 생각을 갖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얼마 전, 승민양은 연세대 영재교육원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거기 가면 다양한 실험 도구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승민양이 직접 응시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론 영재원 시험에 떨어졌지만 영재원 대비 학원도 안 다닌 승민양이 1차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궁금해서 교수님께 물었더니 객관식은 틀리고, 서술형 가운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쓴 것들이 많아서 합격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시던데요.” 하지만 임씨는 “승민이는 흔히 말하는 영재는 절대 아니다”라며 “승민이에게 창의적 사고나 문제해결력이 있다면 그건 마인드맵으로 계발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민양은 “문제해결력?”이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까? 대답은 명쾌하고 쉬웠다. “문제를 봤을 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만들어 푸는 것. 그거 아닐까요? 밑줄 긋고, 정리하고, 중심 내용을 뽑고, 기호 등으로 단순화해서 푸는 방법을 찾는 거죠. 단순화할 줄 아는 게 문제해결력 같아요. 단순한 게 제일 쉽잖아요.”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