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는 동안 누구나 이따금씩 마주하는 벽이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골치가 딱딱 아팠을 테다. 나는 연애와 성적과 운동과 글쓰기 따위의 문제에서 갈등했고 쉬이 숨어버리곤 했다. 천성이 게으른 나에게 당면한 문제들은 대개 버거운 것들이었다.
그때 그리 괴롭던 문제들 중 사라진 것들도 있고 아직까지 남아 폐에 달라붙은 담뱃진처럼 구는 것들도 있다. 나는 자주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가끔씩 그때 좀 더 용기 있게 살았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나도 낯선 사람을 만나면 능히 높임말을 듣는 나이다. 주민등록증 검사 걱정 없이 술과 담배를 즐기게 되었다. 텔레비전 뉴스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대통령의 잘못을 지분거릴 수 있다.
미래가 불안해? 치열하게 고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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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이지 나이와 비례하여 걱정은 점점 늘어만 가는 듯싶다. 보통 중학생 때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을 듣는다. 몸과 마음이 질풍노도의 기세로 역동하는 불안한 시기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 질풍노도의 기세로 만화책과 소설 읽기에 바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불안하여 뼈가 시큰하다. 현대는 공포의 시대다. 청년의 미래에는 비정규직의 불안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할까.
강상중 교수가 슬쩍 다가와 고민하라고 권한다. 청춘이란 말이 웃음거리가 된 세상에서 너의 청춘을 구하라고 한다. '고민하는 힘'으로 말이다. 고민하라고? 밥벌이하기도 바쁜데 고민할 시간이 있냐는 면박이 돌아올 법하다. 그러나 강상중은 고민 없이는 인간적으로 살기 불가능하다고 대뜸 선언한다.
강상중이 일본 사회에 그토록 맹렬한 비판을 하는 이유는 그가 재일교포 2세라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근대의 잔재가 여전한 일본에서 '조센징'으로 살기가 몹시 괴로웠을 거라는 것은 능히 짐작이 된다. 극우파의 칼침에 대비하여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닌다는 일화가 있다. 굉장한 용기다.
강상중의 힘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로부터
강상중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힘을 빌어 세계화 시대와 자본주의 사회를 수도 없이 횡단한다. 세계화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변질된 형태다. 일본이 당면한 세계화 시대는 관계의 분열과 자아의 불안을 만들었다고 본다.
그가 연거푸 인용하는 소세키와 베버는 청년 강상중이 우울증에 허덕일 때 그를 구해준 스승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문호이고,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자본주의를 말하는 거물급 사회학자다.
강상중은 소세키와 베버를 끌어들여 '인생 선배'로서 고민의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이백 쪽이 되지 않는 에세이집이지만 참으로 많은 구석을 찌른다. 자아 정체성부터 노후 계획까지 짚어내는 오지랖이 대단한데 개인적인 인생사와 여러 시사점을 끌어들여 쉽고 재미있어 금방 읽힌다.
그래도 강상중은 역시 진지하다. 웃고 떠들자는 이야기가 아닌 까닭이다. 강상중의 모든 인생 이야기들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유로운 개인'의 환상을 까부수며 타자(他者)와의 사회관계 속에서 자아를 온전히 할 것을 주장한다.
청춘이여, '핫' 하게 살라
고민이란 '마음 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운다'는 뜻이다. 어쩌면 바야흐로 고민을 피하는 태도가 '쿨'하게 멋있는 모습으로 되었는지 모른다. 진정 청춘이라면 '쿨'하게 살지 말고 '핫'하게 살아야 한다.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고, 증오해야 할 것을 증오하며 청춘을 불태우라고 부추기고 있다.
그리하여 아무도 세상에 저항하지 않으면 공포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고민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테다. 마침내 고민의 힘으로 전장에 섰을 때 '할리 데이비슨'을 부르릉거리며 호방하게 웃는 강상중을 만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