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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많이 읽었다고 다가 아니야!

리첫 2009. 4. 18. 13:59

인상깊은 글이 있다. '선인들의 독서법'이라는 글이다. 선인들의 독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선인들은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눈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었다. '독서(讀書)'란 말 그대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소리 내어 반복해서 읽으면 '인성구기(因聲求氣: 소리로 인하여 기운을 구한다)'라 하여 그 글 속에 담긴 옛사람의 정신이 자신에게 들어온다고 믿었다.

 

또한 읽을 때는 '글결'을 살려 읽었다. 글결이란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느껴지는 자연스런 리듬이다. 소리 내어 읽었을 때 가락이 매끄럽고 호흡에 따라 자연스런 리듬을 타면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을 자꾸 읽다 보면 글의 호흡과 자신의 호흡이 일치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 글의 호흡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 몇 권의 책을 떼고 나면 '문리(文理)'가 생긴다. 문리가 튼다 함은 한문 문장의 구문 구조를 터득함을 이른다. 옛사람들은 <맹자>를 천 번 읽으면 문리가 튼다고도 했다.

 

"무조건 외우기만 능사로 알았던 예전 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생각에 놀라운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뜻도 모르고 외운 한 구절이 오늘 배운 새 구절과 연관되고, 이 책의 내용이 저 책의 내용과 연결되면서, 지식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저희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인 줄을 깨닫는다. 일단 이 단계에 진입하면 그 다음부터는 차원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던 말이 또렷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따로 놀던 생각이 한 초점을 향해 달려간다. 하나 들어 하나 알기도 바쁘던 녀석이 하나만 들어도 열을 알게 된다. 이른바 문리가 난 것이다." (책 244쪽)

 

그러다 독서가 깊어지면 의문을 품어 모르는 것을 묻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따지는 독서를 했다. 스승을 찾아가 묻기도 하고 편지를 띄워 묻기도 하였다. 이도저도 여의치 않으면 여러 책을 찾아보았다. 이때 사용한 방법이 '초서(抄書)'인데 이를테면 메모하는 독서법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발췌해서 베껴 쓰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 시작한다. '주견(主見)'이 생겨나는 것이다. 독서가 쌓이고 생각이 쌓이면 '식견(識見)'이 생겨난다.

 

"식견이란 세상을 보고 사물을 이해하는 안목이다.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을 단순한 정보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내 나름대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 책을 읽는 목적은 바로 이 안목을 세우기 위해서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식견이 생겨나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식견이 생겨야 가치 판단을 할 수가 있다." (책 213쪽)

 

'책을 읽는 까닭'이라는 글에서는, 옛사람이 생각했던 독서의 방법과 목표가 잘 나타난 글로 백광훈의 글을 인용해 주고 있다. 같이 따라가 보자. 백광훈의 글은 대략 이런 내용이다. 논어를 읽고 또 읽으라는 것. 평생 이 한 책만 외워도 선비로 사는 데 충분하다는 것. 재주와 학식이 크게 이루어진 뒤라도 귀천과 궁달은 천명에 내맡겨진 것일 뿐 연연하지 말라는 것.

 

"옛날은 독서의 방법과 목적에 대한 생각이 본질적으로 지금과 달랐다. 책은 왜 읽는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견을 얻기 위해 읽었다. 식견은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왜 사는가? 나는 누군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독서는 이런 질문들에 곧바로 해답을 제시했다." (책 245쪽)

 

책을 읽는 목적과 책을 읽는 기쁨은 다르지 않다. 책을 왜 읽는가?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책을 읽는 이 자신의 삶을 질적으로 고양시켜 주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독서'라는 글을 읽어 보라.

 

독서는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매번의 독서가 따로따로의 것이라면 기왕의 독서는 쓸모없는 것이 된다. 이른바 '구슬을 꿰는 독서법'이 필요하다. 다산 정약용은 '소학주천서(<소학주천>이라는 책의 서문)'라는 글에서 늙은 장사꾼의 말을 가져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 섬이나 되는 구슬을 얻었다고 해도[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해도] 꿰미로 이를 꿰지 않는다면[갈래와 체계를 세워 정리해 두지 않는다면] 어딜 가도 잃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게다'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법'도 들어 보자. 책을 읽다가 어떤 한 부분이 막히면 계속하여 관련 자료들을 찾아가며 해결해 나가는 독서법이다. 이른바 링크식 독서법이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 함은 온전히 책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덕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푹 젖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를 "푹 젖으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읽기만 해서는 안 되고 생각으로 깨쳐야 한다. 글 쓴 사람의 마음까지 투철하게 읽어, 책 속의 사람과 내가 대화할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러야 한다"로 다시 풀어 준다.

 

또한 김창흡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산 독서는 책을 덮은 뒤에도 책 속의 내용이 눈앞에 또렷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보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