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등록금, 교육 진보의 징검다리 / 이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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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일부 명문 사립대는 입학사정관제 특유의 불투명성을 악용하여, 특목고·자사고 중 상위 랭킹 학교 출신자를 선발하는 데 활용할 것이다. 왜 그럴까? 입학사정관제에는 ‘이걸 지켜야 입학사정관제’라고 할 만한 핵심적인 규칙이 없고, 무엇보다 이를 운용하는 대학의 ‘철학’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은 ‘우리 대학이 몇 등인가’가 최우선 철학이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제 또한 당연히 서열 경쟁의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대학 서열을 가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인데, 첫 번째인 대학 평가의 등수를 따지는 방법은 가장 합리적이긴 하지만 영향력은 가장 미미하고, 두 번째인 합격자 수능점수 커트라인을 따지는 것은 수능 비중이 높은 정시 전형에서는 가능하지만 최근 대학 정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시 전형에서는 적용 불가능하다. 세 번째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 고등학교의 진학실적을 따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원외고 출신이 고려대에 200명, 연세대에 100명 진학했다면 고려대는 ‘우리가 2등이고 쟤네는 3등이래요’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고려대의 최근 행각을 보니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에 연세대를 따돌릴 각오를 단단히 한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의 정원 비중이 전국 대학 가운데 가장 높은 23.5%이다.
대학 문제에 관한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대안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이다. 하지만 이 방안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아무리 재정적 인센티브를 준다 해도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 사립대들이 국립대 네트워크에 편입되려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등록금 비싼 일류 사립대, 등록금 싼 이류 국립대’ 체제가 성립할 위험이 있다. 서울대의 특권적 지위가 사라지는 대신 고려대·연세대 등이 귀족학교가 될 것이다.
그보다는 우선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립대에도 정부 재정을 직접 투입하도록 하는 길에 집중했으면 한다. 이를 통해 대학 재정이 일단 준공영화되면, 이를 근거로 학생 선발 과정에 강력한 기회균등 원칙을 도입하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제도화할 수 있다. 관료적 속박을 경험해온 대학들은 재정지원을 매개로 통제권을 강화하는 데 저항하겠지만, 학생 선발 이외 영역에서의 자율권은 법률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도 대선 때 ‘등록금 반값’을 공약했다가 총선 공약에서 슬그머니 빼버린 원죄(?)가 있기 때문에, 이를 자극하면 징검다리의 첫 돌이 현 정부에서 놓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 국민이 등록금 때문에 대학에 다니지 못함을 억울해하는 것은, 대학교육에서 ‘수익자 부담’이라는 시장주의 원칙을 거부하는 정서가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정서가 사라지기 전에 등록금 문제에 좀더 집중하자. 이것이 교육 진보의 징검다리다.
이범 교육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