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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의 공교육을 비판할 때 흔히 듣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학교가 아이들을 억압하고 옥죄는 현실을 비판하는 말 정도로 이해하였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이 문제가 많기 때문에 학교를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의무화된 근대적 국민교육 자체가 사라져야할 낡은 유물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 테일러 개토가 쓴 <바보만들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의무교육이 오히려 문맹률을 높이고 있다는 놀라운 통계였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의무교육 형태가 미국에서는 1850년 무렵 매사추세츠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주민 80%가 의무교육에 반대하여 저항하였으며, 때로는 무기를 들고 싸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였던 케이프코드의 반스터블에서는 1880년대에 주 방위군이 지역을 점령하고 아이드를 학교로 호송해 갈 때까지 아이들을 내놓지 않고 버텼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얼마 전에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공표한 문서에 따르면 의무교육이 시작 되기 전 그 주의 문맹률이 2%에 불과하던 것이 의무교육이 시행된 뒤에는 1990년까지 9% 이하로 떨어진 일이 없다는 겁니다."(본문 중에서)
세상에, 의무교육을 반대하기 위하여 총을 들고 싸웠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왜 그들은 의무교육에 반대하였을까? 1800년 무렵 인위적인 방법으로 국가의 통일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아마 당시 미국 사람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마치 부안 방패장 설치를 반대하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등교거부운동'을 하였던 것 처럼, 중앙집권적 의무교육을 반대하였던 것 같다.
미국에서 의무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버트런드 러셀'의 표현을 빌어 잘 설명해준다.
"미국의 대량교육은 비민주적 의도를 함축한 것으로서 인간의 다양성을 제거하고 그 다양성의 원천인 가정을 억압함으로썩 국가적 통일성을 조작해내는 수단이라고 말입니다.... 반지성적이고 그릇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신감 없는 젊은이, 그리고 내면적 자유를 다른 어느 나라 젊은이들보다 적게 가진 젊은이가 미국 젊은이라는 것 입니다."(본문 중에서)
존 테일러 개토는 미국에서 의무교육이 시작된지 110년이 지났지만, '하나의 옳은 길'이 있다고 믿는 군중들은 아직도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바람직한 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제는 새로운 길,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 한다.
미국에서 공립학교 교사로 20년 넘게 일해 온 저자는 "가정과 지역사회를 재건하기만 하면 젊은 사람들은 이 나라 초창기에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교육시킬 것"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학교교육에 쏟아 붓고 있는 돈을 다시 가정교육으로 돌린다면 약 하나로 두 가지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가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의무교육 받지 않으려고 총을 들고 싸웠다
아울러, 제도적 학교를 해체하고, 교사자격 제도를 없애자는 과격(?)한 주장을 펼친다.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재주껏 가르치게 하자는 것이다. 그는 자격증을 가진 교육전문가들이 나서야만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얘기는 멀쩡한 사기라고 강조한다.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모두 사범학교에서 자격증을 받은 교사들이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아무나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세요. 세금을 돌려 받아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스승을 골라잡으세요."(본문 중에서)
그는, 지금의 학교와 비교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지금처럼 멍청한 고객들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학교가 틀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바람직한 교육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이란 표면에 물감을 덧붙임으로써 형상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임에 반해 조각이란 재질의 일부를 떼어냄으로써 재질 안에 내재하던 형상이 풀려 나온느 것이지요. 이게 중요한 차이입니다."(본문 중에서)
개토는 교육이란 그림보다는 조각과 비슷한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아이들 속에 내재된 힘을 끌어내고,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어떻게 익혔는지에 관한 IBM 부사장의 연설을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이 나라가 스스로 깨우친 컴퓨터 전문가의 나라가 될 거라고 하더군요. 무슨 학교교육이니 하는 거 없이 말입니다. 벌써 4천 5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익숙하게 컴퓨터를 쓰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컴퓨터를 알게 된 것은 어떤 체계 잡힌 교육을 받고서가 아니란 거죠."(본문 중에서)
개토는 만약에 학교가 공식적으로 컴퓨터 쓰는 법을 가르칠 권리를 쥐고 있었다면, 이렇게 되기는 커녕 엉망진창 뒤죽박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런 게토의 예언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사실이다. 실제로 윈도우 비스타가 출시되기 직전까지 학교에서는 윈도우 엑스피 대신에 오래 전에 출시된 윈도우 98 사용법이 담긴 교과서로 수업을 하였다.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모두 컴퓨터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 컴퓨터가 학교 정규 교과목이 된 것은 순전히 관련 산업의 시장을 키워주는 것 외에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이기는 하지만, 한극판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나오기 전에 실제로 이 게임을 하기 위하여 아직 영어를 배우지 않은 많은 어린아이들이 알파벳을 그림처럼 외워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게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의무교육이 시작된 후 대부분 사람들은 학교에서 자격증 가진 교사들에게 배워야만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탈학교운동에 참여하는 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재주껏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깨닫고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학교가 아이들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가?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거의 아무런 호기심도 없고 조금이나마 있는 것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미래의식이 약합니다. 내일이 어떻게 오늘과 떼어낼 수 없이 얽혀 있는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역사의식이 없습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서로 잔인한 짓을 합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친근한 관계나 솔직한 태도에 불안해합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물질주의를 떠받듭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면 겁쟁이가 됩니다.
존 테일러 개토는 <바보만들기>에서 오늘날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펴보면, 아이들을 망치는 주범이 학교와 TV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1주일 168시간 가운데 아이들은 56시간씩 자야 합니다. 아이들은 1주일에 평균 55시간씩 텔레비젼을 본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30시간, 준비하고 오고 가고 하는 데 8시간, 숙제에 평균 7시간, 학교가 잡아먹는 시간이 모두 45시간입니다."(본문 중에서)
여기에 저녁식사 시간 3시간을 빼면 주당 아이들 자기만의 정신세계를 살찌우거나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개인시간은 딱 9시간 뿐이라고 한다. 그래도 미국 아이들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각종 개인교습을 받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다.
한국 아이들은 어떤까? 한국 아이들은 방과후에 보통 하루에 3~4개씩 학원을 옮겨다니면서 일주일에 적어도 20 ~ 30시간 이상을 보낸다. 미국 아이들보다 잠을 적게 자거나 TV 보는 시간을 줄여서 학원을 다니는 셈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을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는 마약, 맹목적 경쟁, 오락화한 성, 도박, 알코올, 폭력탐닉, 상품구매에 매달리는 탐닉적이고 끔찍한 의존적 삶은 모두 학교와 TV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런 학교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커서 시민이되면 탁월함과 미학을 모두 무시하는 얄팍한 '대중적 성향'을 가지게 되고 자기들 삶의 개인적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의무교육은 바보 만드는 교육
이미, 적지 않게 대안교육과 대안학교에 관한 책과 글을 읽고 강의도 들었지만, 존 테일러 개토가 쓴 <바보만들기>는 오늘날 엉망이 되어버린 한국의 교육 현실이 어떤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된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근대교육을 수입한 한국은 미국교육 의무교육이 가진 문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미국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많은 나라를 망치고 있는 근대적 의무교육 시스템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개토는 지금과 같은 미국학교 교육 체계가 지구상에서 시작된 것은 1819년대 프러시아에서였다고 한다. "국가의 힘에 떠밀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강제적인 학교교육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프러시아는 중앙집권화된 학교 교육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고 한다.
▲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 고분고분한 광산노동자
▲ 정부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원
▲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는 사무원
▲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들
당시, 학교는 독일 지도층 가정이나 제도권 인사들에게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민족 차원의 동의를 꾸며내고, 대 프러시아로 통합하는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학교에서 아이들은 교사가 던져주는 추상적인 지식만 배우다 보니 말 잘듣고 고분고분하고 전제적 질서에 젖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불만이 있어도 표출하지 않고, 비판하는 생각을 할줄 모르고 올바르게 토론할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
그는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예로 들며, 극단적으로 제 1차 대전은 교사들의 속임수 때문에 일어났다는 '레마르크'의 주장을 되새겨 보라고 한다. 마찬 가지로 본 회퍼 목사는 제 2차 대전 역시 스스로 생각하는 이성 능력을 잃어버리게 한 학교의 책임이 커다고 지적하였는 것이다.
프러시아식 학교 교육은 이성과 지성,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 도덕적 의지까지 마비시키는 '우민화 교육'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많은 미국지도자들이 이런 프러시아교육을 배우기 위하여 독일로 몰려갔다고 한다. 다.
"19세기에 미국 상류 가정의 젊은이 수천 명이 프러시아와 독일 여러 도시로 건너가서 학위를 받아가지고는 그런 자격증 제도가 뭔지도 몰랐던 나라에 돌아와서는 대학, 기업, 정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지 않았거나 독일 박사에게 직접 배운 제자가 아니면 높은 자리는 넘볼 수조차 없게 된 거죠."(본문 중에서)
이런 과정은 한국전쟁 이후에 미국으로 몰려간 한국 지도자들과 지식인의 모습과 쏙 빼닮았다. 위의 인용문에서 독일을 미국으로 바꾸면 바로 한국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글이 된다.
학교 교육은 결국 하나의 생각을 과목으로 쪼개고, 그 과목을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누는가 하면, 수업 시간을 토막내어 종소리만 울리면 수업을 마치도록 만드니 스스로 공부하는 마음이 끊이없이 방해 받아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읽기, 쓰기, 셈하기 백 시간이면 충분하다.
개토는 읽기, 쓰기, 셈하기는 원래 가르치기 힘든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각 개인이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교육의 강제성과 학교의 교과진도가 가로 막는 것만 피하면 얼마든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글을 완전히 익히고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 백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증거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 학교가 이것을 가로 막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바보이야기>는 1990년 뉴욕시 올해의 교사상, 1991년 뉴욕주 '올해의 교사상' 수상 연설과 다른 강연 자료 그리고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저자의 살아 온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의무교육이라는 강제 규정으로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는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는 축소되어야지 결코 더 이상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