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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교가 아니라 영어학교

리첫 2009. 4. 24. 11:21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22일 "임기 내에 국제고를 더 짓지 않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4월 23일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2010년까지 국제학교 7개를 추가로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매일경제 4월 23일자)

이름만 같고, 모든 게 다른 국제학교

국제학교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에 오르내린다.
최근 들어 논란이 되는 국제학교만 하더라도 송도국제학교, 서울용산국제학교, 제주국제학교 등이 있다. (서울용산국제학교가 직접적으로 거론된 바는 없지만, 논란이 된 서울지역 '외국인학교' 중 대표적인 학교 예로 제시한 것일 뿐임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이 세 개의 국제학교는 법적 성격이나 입학자격, 각종 교과내용 등이 동일한 체계를 가지고 있을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셋 다 다르다. 이름만 같다. 각기 다른 세 개의 국제학교가 존재하는 셈이다.

굳이 그 성격을 분리하자면, ▲ 내국인의 입학이 제한적이며, 외국인의 교육을 위한 학교로서의 서울용산국제학교, ▲ 외국인의 교육을 위한 학교라는 명분만 존재할 뿐, 내국인의 입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교로서의 송도국제학교, ▲ 전적으로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여, 물론 외국인도 입학은 가능하지만(하지만 어느 외국인이 제주도까지 유학을 보내겠는가), 국제적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하는 학교로서의 제주국제학교다.



                                                         ▲ 송도국제학교 파빌리온관


교육법상 국제학교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교육법상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란 용어는 없다. 국제학교는 단지 학교 명칭일뿐 학교 유형이 아니다. 외국인학교(Foreign School)와 외국교육기관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7월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인학교의 교명이 oo국제학교인 경우도 있고, 송도에 준비중인 외국교육기관의 교명이 oo국제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학교는 학교의 유형이 아니라, 학교의 명칭”이라고 구분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이 상이한 국제학교를 ‘외국인학교’라는 이름으로 두루뭉술하게 규정하고, 사실상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한국경제 2009년 2월 3일자)

내국인을 위한 학교인가, 외국인을 위한 학교인가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월 서울지역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허용비율을 사실상 50%까지 늘리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반대여론이 강했다. 30%는 그대로 유지했다. 해외체류 기준 기간은 5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송도국제학교의 경우, ‘외국인 재학생수’의 30% 범위 안에서 외국 거주 경험이 없는 순수 내국인 학생에게도 입학이 허용된다. 하지만 최근 ‘정원의 30%’로 규제를 완화하도록 관련 규정의 개정을 건의했다. 이에 따라, 23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현재 외국인 재학생의 30% 범위에서 입학이 가능한 내국인 입학정원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송도국제학교는 9월 개교를 목표로 세웠지만, 외국인 학생 확보에 비상이 걸리는 등 정상개교에 큰 차질이 빚어왔었다. 국제학교는 외국인 재학생 수에 따라 내국인 입학정원이 정해지는데, 현재 송도국제학교 입학희망자는 채 100명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당연히 내국인 입학비율이 급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송도국제학교의 핵심 기관인 미국 부동산 회사 게일사는 애초에 70% 정도에 달하는 내국인 입학을 주장한 바 있다.

보통학교냐 귀족학교냐

지난 6일 제주도교육청은 ‘제주영어교육도시내 국제학교 설립 운영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학교 납입금은 초등학교의 경우 등록금 1082만원, 기숙사비 660만원 등 1742만원, 중학교는 등록금 1304만원, 기숙사비 660만원 등 1964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이 금액은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세워질 국제학교 중 제주도교육청이 설립하는 공립학교에 해당되는 것인 만큼 나머지 사립학교들의 납입금은 더 늘어난다.

현재 서울영훈초등교의 연간 납입금은 1100만원, 서울외국인학교는 3000만원이다. (경향신문 4월 7일자) 송도국제학교는 연간 학비 2000만원 수준이다. (매일경제 4월 20일자)



그렇다면 국제학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쯤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외국인학교냐, 아니면 국제학교냐, 아니면 영어학교냐이다. 국제성, 그러니까 일국체제를 넘어서 전지구적 차원의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그런 시스템을 학습하고, 교우관계를 만들자는 것인지, 아니면 외국인을 위한 외국의 학교인지, 아니면 단지 영어로만 수업을 하고 미국교과서 정도만 가져와서 배우면 되는 정도인지, 먼저 이 부분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비즈니스나 외교 등의 이유로 한국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한 외국인학교를 규정하기는 쉽다. 그들을 위해 학교를 만들고, 빈 자리가 있으면 그쪽 문화에 관심이 있거나 그 나라에 살다온 학생들로 하여금 빈 자리를 메우고, 함께 공부하도록 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외국인학교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다 외국인학교에 대한 수요가 팽창되기 시작했다. 외국인학교의 입학기준을 충족시키는 외국생활 경험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국내에 들어왔을 때 국내학교보다는 외국인들을 위한 외국인학교를 선호하는 경우가 늘게 된 것이다. 대학진학에의 장점도 있고, 더구나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특히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이 늘게 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수요가 급속도로 늘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영어교육은 기본으로 하되, 영어가 표상하는 외국 문화, 그리고 국제 문화에 대한 교육을 아예 국내에서 특수교육기관을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역시나 팽창하게 됐다. 이들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 그곳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어 하는 계층들이다. 이들을 위해서 자사고나 각종 특목고 수준의 또다른 비평준화 학교인 국제학교라는 이름의 영어학교 혹은 외국인학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겉으로는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인을 위한 학교, 혹은 외국인 투자를 통한 국제학교, 외국학생들과의 교우관계를 통해 영어를 익히고 국제적 감각을 익히고픈, 그런 의미의 국제학교라는 이름을 단 여러 양식의 학교가 설립논의에 나서게 된 것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제학교와 영어학교, 외국인학교의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비평준화의 예외인지, 진정 학생들의 국제성이라는 특수성과 전문성을 길러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들을 잡아놓기 위한 외국학교의 한국 유치인지 등등을 정확히 해야 한다.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교육시장 개방인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물론 필자 또한 이 부분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고 자신이 없다. 다만, 최근 언론을 통해 거론되는 국제학교, 외국인학교에 대한 여러 보도들을 종합해볼 때, 우리 사회와 교육계는 이 부분부터 솔직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국제학교가 외국인을 위한 학교인지, 아니면 내국인을 위한 학교인지를 분명히 하자. 국제학교가 영어학교라는 조건만 달성되면 필요충분조건은 달성되는 건지, 아니면 내외국인간의 공동생활을 통해 외국의 다양한 문화를 습득하고, 자연스럽게 국제형 인간으로 키우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건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한국의 교육제도와 조화롭게 만들어나갈지를 분명히 하자.

국제학교가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교육시장 개방의 목적인지, 또 한편, 국제학교가 평준화의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비평준화 학교, 이른바 평준화의 예외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단계적 성격을 갖는지 또한 분명히 해야할 것 같다. 정책적 목표와 수단에 대한 정리와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글:최재천

출처: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