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58)은 내는 책마다 화제를 모은다는 미국의 베스트셀러 저술가인데, 한국에도 꽤나 많은 팬이 형성돼 있다. 방대한 과학지식을 특유의 입담에 녹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유럽 여행담 <발칙한 유럽 산책> 등이 기왕에 출간돼 비교적 널리 읽힌 덕이다. 이번엔 그의 이름을 아예 제목으로 앞세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이 번역돼 나왔다.
그가 1994년에 펴낸 이 책의 원제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다. 한국판이 부제로 쓴 것처럼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일종의 교양 역사서라 할 이 책이 가지가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밑실은 영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영어다. <…발칙한 영어 산책>은 미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지고 최대 강국이 되기까지 미국사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애초 영국의 말이던 영어가 미국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지, 아메리카 원주민(=속칭 인디언)들의 다양한 언어가 어떻게 미국 영어의 낱말과 지명에 영향을 끼쳤는지 등을 풀어헤쳐 보여준다. 언어를 화두 삼아, 정치·전쟁·발명·음식·쇼핑·스포츠·영화 등 미국 역사와 문화의 장면들을 그려내는 이 책은 그러니 미국 영어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대한 자유분방한 탐사기라고도 할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이 보기에 미국 영어 탄생의 은인은 17세기 초(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닿은 필그림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 아메리카 원주민 스콴토다. 미국은 자신들을 도왔던 원주민들을 학살과 유폐 정책으로 몰락시켰지만, 오늘날 미국의 많은 지명은 원주민 말에서 비롯했다. 이로쿼이족의 말 켄타케(kentake)에서 켄터키 주 이름이 나왔고, 코네티컷·밀워키·시카고·미네소타·캔자스·오리건 등도 원주민 말에서 유래했다.
미국인을 지칭하는 ‘아메리칸’이라는 말은 1740년에 생겨났다. 본디 아메리칸이란 말은 1578년부터 기록에 나타나지만 어디까지나 원주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미국에 건너간 유럽인들을 이주민 혹은 식민지민이라 지칭하던 영국이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선 아메리칸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새로운 국가가 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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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스스로도 “미시시피 강의 너비만큼이나 자학 성향이 커서” 자신들의 언어습관을 비판적으로 다룬 찰스 디킨스의 <미국인의 비망록>은 출판되자마자 책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미국 안에서도 새 영어에 대한 공격이 가해졌는데, 독립 선언문 서명자의 한 사람인 존 위더스푼은 교육받은 사람들조차도 모호한 언어습관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매드’가 ‘앵그리’를 대체하고 ‘굿’이 ‘클레버’를 대신하는 등 대영제국에서는 그런 지위와 학력의 사람들이라면 쓰지 않는 부정확하고 상스런 말투를 쓴다는 비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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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영국의 언어 패권주의에 반기를 드는 이들도 나타났다. 작가 로버트 휴는 “왜 우리의 언어가 영국에서 빌려온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계속 문질러 닦아서 흠집 하나 없이 돌려줘야 하는 구리주전자라도 된단 말인가”고 반문했다.
텔레비전이라는 낱말은 1907년에 나왔지만, 초기에는 ‘일렉트릭 아이’(electric eye), ‘픽처 라디오’, ‘일렉트릭 비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처음 본 건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였는데, <뉴욕 타임스>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화면을 뚫어져라 봐야 하는데, 미국의 보통 가족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텔레비전이 라디오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필그림을 두고서 “이들은 영국 국교회를 이탈했으므로 청교도라기보다는 분리주의자로 불러야 한다”거나 “발명왕 에디슨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가로채는 독특한 재능을 지닌 발명가가 분명했다”는 서술에선 빌 브라이슨 특유의 비트는 유머의 묘미가 엿보인다.
이 책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영·미 언론들로부터 키득키득 깔깔 웃게 만드는 에피소드로 가득 찬 독창적인 책이라는 등의 상찬을 받았다. 한데, 미국 영어가 걸어온 길을 어찌 보면 지나치리만치 시시콜콜한 샛길까지 두루 답사하는 이 책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들에게도 똑같은 강도로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인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