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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국립공원 우리밀칼국수

리첫 2009. 5. 1. 14:30
밀가루 음식 좋아하는 사람 참 많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라면·과자·빵·우동·칼국수·자장면·떡볶이…. 밀가루를 먹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일 년 중 며칠이나 될까. 한때 나는 자장면만 먹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바란 적 있다.

 

밀가루 대부분을 수입하고, 수입 밀가루에 막대한 양의 방부제와 표백제를 뿌린다는 걸 안들 이제 와서 어쩌겠나 싶었다. 먼 곳에서 두세 달을 배타고 오려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너그럽게' 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수입 밀가루를 벌레도 외면한다는 사실에는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벌레도 안 먹는 걸 먹다니. 그럼 나는 뭐지?'

 

  
▲ 4.19 국립공원 인근에 있는 우리밀 칼국수 '재미난밥상' 삼각산 재미난 학교 학부모와 교사 들이 힘을 모아 유기농 칼국수 집을 냈다.
ⓒ 고영준
유기농

 

아무리 그래도, 밀가루 음식은 포기할 수 없었다. 좋은 밀가루로 조미료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식당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에 가격까지 착하다면? 내가 말해 놓고도 손사래 칠 일이 벌어졌다. 올해 4월 우리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유기농 칼국수 집이 문을 열었다. 4·19국립공원(서울 강북구 수유동) 근처에 있다. 이름은 '재미난 밥상'.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는 법. 개업하자마자 찾아갔다.

 

  
▲ 집처럼 포근한 '재미난밥상' 학부모와 교사들은 일을 쉬는 주말에 울력도 뛰고 인테리어에도 힘을 써주었다. 걸려있는 예술품과 메뉴판도 학부모 작품이다. 그래픽디자인이나 편집디자인 일을 하는 분들이 만들었다. 이웃이 함께 식당을 만들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 고영준
재미난밥상

 

정문을 들어서자 나를 맞이하는 편안한 가정집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메뉴를 보니 멸치칼국수·사골칼국수·궁중만두·보쌈·무쌈·매운황태찜닭 등이 있다. 가격은 여느 집과 비슷했다. 함께 간 친구들과 멸치칼국수·사골칼국수·궁중만두를 시켜 배부터 채웠다.

 

역시나 깔끔한 맛이다. 반찬은 겉절이김치와 깍두기. 칼국수에는 겉절이가 생명이다. 칼국수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순간 '이집 대박이야' 생각했다. 절인 배추를 유기농 생협(생활협동조합)에서 공급받아 매일 무친다고 한다.

 

벌레도 안 먹는 밀가루 먹었다니

 

  
▲ '재미난밥상'에서는 도자기와 스텐을 그릇으로 쓴다. 맛의 완성은 ‘음식을 담는 그릇’에 있다(고 한다). 무거운 걸 피하고 깨질 것을 염려해서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을 많이 쓴다. 사실 나는 맛만 있으면 그릇이나 주변이 좀 그래도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 집은 달랐다. '재미난 밥상'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도자기와 스텐을 사용한다. 맛의 절정에 이르기 위한 요리사의 집념과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손님을 보호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 고영준
재미난밥상

 

맛의 완성은 '음식을 담는 그릇'에 있다(고 한다). 무거운 걸 피하고 깨질 것을 염려해서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을 많이 쓴다. 사실 나는 맛만 있으면 그릇이나 주변이 좀 그래도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 집은 달랐다. '재미난 밥상'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도자기와 스텐레스 그릇을 사용한다. 맛의 절정에 이르기 위한 요리사의 집념과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손님을 보호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도자기가 좀 깨져도 이런 자세는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업 때는 그럴 듯한 그릇 내놓다가 한두 번 당하면(?) 질 낮은 플라스틱 내놓은 집 많이 봤다.

 

  
▲ '재미난밥상' 염규홍 사장님 유기농 칼국수 집 '재미난밥상'을 통해 사람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염규홍씨
ⓒ 고영준
염규홍

맛도 좋고 배도 뜨뜻하다. 이제야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카운터에 계신 사장님(염규홍)이 어딘지 어색하다. 장사를 안 해본 분 같다. 불러서 여쭈어 보았다. 처음이란다. 무슨 꿍꿍이로 이런 일을 벌이셨는지 궁금했다.

 

맛난 음식으로 대박을 꿈꾸는 여느 음식점과는 사연도 달랐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3명이 더 있는데, 모두 우리 지역 대안학교 '재미난학교' 학부모들이다. 학부모들끼리 주변에 모여 사니까 마실도 다니고 이리저리 만나다 보니 새로운 일을 모색하게 된 것이란다.

 

작년에 하던 일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작년 12월부터였으니까 넉 달 동안 준비해서 개업했다. 적게 벌더라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나누는 식당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유가 또 있다. '재미난 밥상'이 동네 사랑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사람답게 사는 마을을 꿈꾸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토방 같은 곳 말이다.

 

알고 보니, 이 식당을 세운 건 네 명 힘만이 아니었다. 4·19 공원 주변에 모여 사는 재미난학교 학부모과 교사들이 똘똘 뭉쳐 일을 낸 것이다. 이들은 사랑방처럼 이용할 수 있는 식당, 맞벌이부부 아이들에게 안전한 저녁식사를 대접해 줄 식당을 오래 전부터 염원하고 있었다. 당당히 깃발을 들고 선 이들에게 동료 학부모들이 아낌없이 힘을 보탰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가정형편에 맞게 1구좌(100만 원) 이상씩 출자해줬어요. 이윤이 남으면 돌려주겠지만, 글쎄…. (하하) 식당 한 번 안 해본 사람 믿고, 출자해준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에요."

 

학부모와 교사들은 일을 쉬는 주말에 울력도 뛰고 인테리어에도 힘을 써주었다. 걸려 있는 예술품과 메뉴판도 학부모 작품이다. 그래픽디자인이나 편집디자인 일을 하는 분들이 만들었다. 이웃이 함께 식당을 만들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식당이 동네 사랑방

 

  
▲ '유기농 과자'도 있어요. 유기농 음식과 과자까지. 사랑방 역할 톡톡히 한다. 유기농 과자는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이다.
ⓒ 고영준
유기농과자

 

명목상 직책은 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주인이다. 손님들도 식사를 하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함께 식당을 책임지는 마을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가족 같이 따뜻한 분위기가 한결 더했다.

 

재미난학교 아이들을 위해 황태해장국을 개업 일주일 만에 개발했다. 아무리 유기농이라고 해도 아이들에게 저녁식사로 밀가루만 내놓을 수 없어서다. 더불어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은 식당을 들른 이웃들에게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을 몸으로 전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내가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돼서인지 도배와 장판에도 눈이 갔다. 보통 인테리어를 새로 한 집은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냄새가 없다. 음식 때문일까? 사장님께 여쭈어 보았다.

 

"보이지 않는 면도 나름 신경을 썼어요. 도배나 장판도 친환경소재로 했지요.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나쁜 공기를 마시는 건 맞지 않잖아요."

 

하고 많은 음식 중에 칼국수로 정한 것은 식당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적절해 보였다. 다른 메뉴는 밑반찬이 많아야 하는데, 칼국수는 김치와 깍두기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기농으로 밥상을 차리려면 반찬 가지 수가 많아선 곤란할 것이다.

 

유기농 쓰는 대신 월급은 짜게

 

  
▲ 함께 일을 벌인 '재미난밥상'의 일꾼들 왼쪽부터 염규홍, 차재혁, 온정숙, 고희라 모두 삼각산재미난학교의 학부모들이다. 보람된 일을 시작한 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 꽃이 폈다.
ⓒ 고영준
재미난밥상

 

유기농 식재료는 '민우회'나 '한살림'같은 생협에서 산다고 한다. 유기농으로 한다고 해놓고 대충 섞어서 파는 얌체 식당도 있기 마련이다. 이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럴 바에는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손님들이 오래 전부터 알아온 동네 이웃이고 아이들이다. 처음 온 사람에겐 유기농 음식이라고 음식을 나르며 '일일이' '자신 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직 주변엔 '생협'이란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안전한 식재료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건강한 농수축산물을 만드는 분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책임 있게 소비하는 '생협운동'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럼 유기농 식재료를 쓰고도 일반 식당과 비슷한 가격에 내놓으면, 남는 게 있을까. 내가 괜히 걱정됐다. 조심스럽게 월급을 물어보았다. 일단 사장님을 포함한 상근자는 120만 원, 반상근은 50만 원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이후 장사가 되는 것을 보고 다시 책정할 예정이란다.

 

  
▲ 유기농 칼국수와 황태해장국 역시나 깔끔한 맛이다. 반찬은 겉절이김치와 깍두기. 칼국수에는 겉절이가 생명이다. 칼국수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순간 ‘이집 대박이야’ 생각했다. 절인 배추를 유기농 생협(생활협동조합)에서 공급받아 매일 무친다고 한다.
ⓒ 고영준
칼국수

 

"월급은 적어도 뜻 맞는 사람끼리 믿을 만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람을 삼고, 적게 벌더라도 기쁘게 일하자고 생각했어요. 박봉에 몸도 고달프지만 행복한 일자리라 감사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식재료를 쓰면서 가격도 적당한 식당은 흔치 않다. 그래서 이런 식당을 내는 사람들이 고맙다. 이들의 우직한 걸음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나와 너, 우리를 함께 살리고 있다. 처음처럼 듬직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어서 나중에 곧 태어날 아이와도 같이 칼국수 먹으러 갈 날이 오기를 꿈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 welife.org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