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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 선딸, 최고의 선물

리첫 2009. 5. 15. 17:14

"부모님 앞에서 수업을 해요?"

 

5월의 신록이 푸르다. 신록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시원하다. 학교 운동장 스탠드 앞, 등나무 색깔이 점점 짙어간다. 가지를 뻗어 감는 기세도 놀랍다. 어느새 보라색 등꽃을 피어 아래로 주렁주렁 내렸다. 꽃에서 풍기는 향기가 2층 교장실까지 바람에 실려 온다.

 

한 2주 전이었다. "똑똑똑!" 교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재서류를 낀 이정숙 선생님이었다. 담당한 업무처리를 꼼꼼히 하여 수고가 많다는 인사를 건넸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선생님께 대뜸 물었다.

 

  
수업에 열중인 이정숙 선생님. 금년 검암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새내기 선생님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자신의 수업을 보여드렸다.
ⓒ 전갑남
검암중학교

 

"이 선생님, 어버이날에 의미 있는 수업을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선생님 수업시간에 부모님을 초청해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부담이 되시려나?"

"저희 부모님을요?"

"어버이날, 부모님께 수업을 보여드리면 부모님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그야 그렇지만…."

 

좀 생뚱맞은 내 제안에 선생님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상기된 얼굴을 보니 부담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공연한 말을 꺼냈나? 그런데 잠시 후 선생님은 내가 말을 꺼낼 때의 표정과는 달리 힘이 실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장선생님, 해보겠어요. 부모님 앞에 한 번 당당하게 해보겠습니다."

"부모님 앞이라 좀 쑥스럽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평소 하던 대로 해보세요."

 

내가 꺼낸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준 선생님이 고마웠다.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새내기 선생님인지라 누가 빤히 지켜보는 수업을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새내기 선생님이지만

 

  
수업에 열중인 이 선생님과 검암중학교 학생들이다.
ⓒ 전갑남
검암중학교

 

이정숙 선생님. 내가 근무하는 검암중학교로 신학기 때 부임한 새내기 교사이다. 그러니까 교단에 선 지 두 달을 조금 넘긴 햇병아리인 셈이다. 가끔 복도를 지날 때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늘 열정이 넘친다. 의욕적으로 자신감 있게 가르치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다.

 

이 선생님이 내게 처음 인사를 하던 날, 선생님의 표정은 기쁨으로 넘쳐났다. 그 어렵다는 교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첫 출근을 하였으니 설레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선생님은 영문과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교원자격증을 획득하였다. 그래서 임용고시에도 동기생보다 늦게 도전한 셈이다. 그리고 세 번 도전 끝에 합격의 영광을 누렸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이 선생님의 첫 출근 날, 나는 축하의 꽃다발을 안겨드렸다. 그리고 당부의 말을 건넸다.

 

"선생님, 오늘 긴장하고 앞으로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근했죠? 항상 처음 맘먹었던 것을 늘 간직하세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학생들은 사랑으로 대하고, 정성을 다해 가르치면 선생님을 잘 따릅니다. 그리고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는 말 잊지 마세요! 수업 잘하는 선생님을 기대하겠습니다."

 

이 선생님은 "여러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근무하겠습니다"는 말로 답하였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어요!"

 

  
뒤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계시는 이정숙 선생님 부모님. 딸아이가 무척 자랑스럽다는 말을 남기셨다.
ⓒ 전갑남
부모님

드디어 5월 8일 어버이날, 이 선생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수업하는 날. 선생님 부모님께서 교장실로 들어오셨다.

 

이 선생님 아버지께서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불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영광이구요. 우리 딸이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어 너무 기뻐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부분은 교장선생님께서 잘 인도해 주세요. 아주 멋진 선생님이 되도록요."

 

공부만 하느라 연애 한 번 못했다며 이 선생님 어머니께서는 이제 좋은 사람 만나 시집을 갔으면 좋겠다는 농을 건네셨다.

 

슬하의 3자녀를 대학원까지 졸업시킨 두 분의 자녀 사랑은 남다른 것 같았다. 맏딸인 이 선생님이 노력에 노력을 다하여 임용고시에 합격하였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기뻤다는 말을 하시는 두 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선생님 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공부를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대신 해주고 싶었다니까요. 마음고생이 참 많았지요!"

 

훌륭한 선생님으로 성장하기를

 

2학년 2반 영어 수업시간. 이 선생님은 침착하게 수업을 진행하였다. 원어민처럼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였다. 선생님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부모님과 참관하는 동료 선생님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학생들과의 호흡도 척척 맞았다.

 

이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고 평가회 시간에 소감을 말했다.

 

"교실에서 부모님을 본 순간 떨릴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담담해졌어요. 힘들게 공부하던 시절 내내 가슴 졸이며 뒷받침 해주신 부모님의 정성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구요. 제 수업을 보며 뿌듯해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큰 효도를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수업으로 그 어떤 물질적 선물보다 값진 선물을 안겨드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식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도 큰 효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잘해야겠다고 부담이 많았는데 이제 기쁨으로 남았다는 말에 함께 한 모두가 공감하였다.

 

부모님께 점심을 대접하였다. 식사를 하시며 두 분께서도 한 마디씩 하였다.

 

"어버이날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네요. 오랫동안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늘 안쓰러웠는데 딸아이가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선생님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교장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큰 딸이 꿈을 이뤄 교단에 선 모습이 보기 좋아요.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자신 있게 수업하는 모습이 평소 집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어요. 딸아이는 자기를 잘 따라주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훌륭한 교사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어버이날, 진행된 공개수업은 부모님과 이를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다.

 

15일(금)은 스승의 날이다. 이정숙 선생님은 새내기 교사로서 첫 번째 스승의 날을 맞이하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교장실을 찾은 이 선생님께 덕담을 했다.

 

  
환한 미소의 이정숙 선생님.
ⓒ 전갑남
이정숙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해요. 내가 한 말 잊지 않으셨죠? 초심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좋은 신랑감 만나 부모님께 소개해 드리시는 것도요."

 

이 선생님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소 짓는 모습이 5월의 신록처럼 참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검암중학교는 인천시 서구 검암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