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사교육 없는 학교' 지원사업을 발표했습니다. 6월에 전국 400개 초중고등학교를 선정하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여 2012년까지 '사교육비 절반'을 경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원되는 예산은 한 학교당 1억5천만 원씩 하여 총 600억 원입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 사업은 지난 2월에 발표한 '2008 사교육비 조사 결과 분석 및 대책'의 일환입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에서 가장 먼저 있는 게 이 사업입니다. 그 때는 300개였는데, 3개월 사이에 400개로 100개 학교가 늘었습니다. 시도교육청과 협의한 결과입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로 선정되면, 자율학교로 지정됩니다.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의 자율권이 확대되고, 학교장의 교원인사 자율권도 늘어납니다. 방과후학교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입시위주 교육을 하는 학교 4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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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안은 전형적인 공급대체입니다. 교과부도 "사교육 수요의 대부분을 학교 교육으로 충족하는 학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선합니다. 정규 수업에는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의 자율권이 주어지니, 마음 놓고 입시위주 교육을 하면 됩니다. '수준별 이동수업'으로 부르든 '수월성 교육'으로 칭하든 간에, 서울대반/ 연고대반/ In 서울반/ 보충반 등을 과목별이나 전체적으로 운영합니다.
교장의 인사권도 그런 방향으로 사용합니다. 초빙교사를 알아서 임용할 수 있으니, 족집게 강사나 인근 학교의 입시 전문가를 모셔옵니다.
방과후학교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방과후 교과 보충수업을 밤 10시나 11시까지 하면 되겠습니다. 이미 하고 있다고요? 초등학교나 중학교도 있고, 고등학교라 하더라도 '자율을 빙자한 강제'가 남아 있습니다. 아, 방과후는 아니지만 0교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학생의 성적에 따라 나눠서 맞춤형으로 진행하는 입시위주 학교로 거듭나지 않을까 합니다. '자율적인' 입시학원형 학교 말입니다.
1조 원으로 10조 원 줄이는, 실로 획기적인 '마술'
단순하게 계산해보겠습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는 1만1153개 교입니다. 이 중 2442개 교는 기숙형 공립고, 자율형 사립고, 학력향상중점학교 등이라 하여 사교육 없는 학교 선정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러면 8711개 교입니다.
'학교당 1억5천만원을 지원한다'는 교과부 방식을 따르면, 1조3천억원이면 됩니다. 8711개 초중고등학교에 1억5천만 원씩 지원하면, 3년 후에 사교육비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20조9천억 원에 달하는 사교육비가 10조 원으로, 자그만치 10조 원이 경감됩니다. 제외하는 학교 없이 모든 학교를 지원해도 1조6729억 원이면 됩니다.
1조 원대의 예산으로 10조 원의 사교육비를 증발시킬 수 있는 마술입니다. 그러니 제발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작 400개 학교, 2012년까지 1000개 학교로 늘린다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지금 당장 한 학교당 1억5천만 원씩 모든 학교에 지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좋아하는 시장원리에 입각해서도 이만한 장사가 없습니다. 비용은 1조 원대, 효과는 10조 원대로, 대단히 경제적입니다. 그리고 10조원의 사교육비가 줄어들면 고스란히 가정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 내수 및 국민경제 전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 제발 지금 당장 모든 학교에서 이 방안을 실시하였으면 합니다. 400개나 1000개만 '자율적인' 입시학원형 학교로 만들지 말고, 모든 학교를 그렇게 만들어주기 바랍니다.
병목구간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사교육비를 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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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와 관련하여 계속 이야기했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의 주요 원인으로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를 지목합니다. 좋은 일자리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원하는 사람보다 좋은 일자리와 좋은 대학의 수가 적은 겁니다. 전형적인 병목현상입니다. 그리고 병목구간 앞에서 자가용 기름으로 사교육비를 경쟁적으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해법은 병목구간 해소입니다. 길을 넓히거나 우회도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더 심한 병목현상을 만듭니다. 좋은 일자리는 체계적으로 줄입니다. 좋은 대학 확대를 위한 대학간 불균형 해소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사고와 국제중 등으로 병목구간 앞에 검문소를 더 설치하기 바쁩니다. 고등학교 단계의 직업교육이라는 우회도로는 만드는 척만 합니다. 이러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교육비 지출 역시 가계 소득이 허락하는 한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놓고 자율적으로 입시교육을 하랍니다. 수요는 잔뜩 늘려놓고, 공급대체 한답시고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하랍니다. 병목구간 앞에서 자유롭게 끼어들기를 하라고 부추기는 격입니다.
그러면 더 엉키겠죠. 기름이 떨어진 차량은 서버리고, 조만간 도로 밖으로 견인됩니다. 경차부터 그럴 겁니다. 전체적으로 어떤 차는 뻔뻔한 끼어들기 기술을 발휘하고, 어떤 차는 서고, 어떤 차는 경적을 울리고, 어떤 차는 욕하고, 기름은 기름대로 들어가면서 속은 속대로 타들어가면서 도로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릅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 = 공교육 없는 학교
400개 학교는 사교육비가 잠시 감소할 수 있습니다. 보육 및 특기적성 사교육은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시 사교육은 한동안만 비교우위를 점합니다. 다른 학교는 하지 못하지만, 400개 학교만 할 수 있을 때가 그 순간입니다. 물론 방과후 교과 보충수업비가 사교육비인가 아닌가라는 논란도 있겠습니다.
이 와중에 400개 학교 이외의 다른 학교가 가만히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해 1억5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정규 수업이나 방과후나 가리지 않고 입시위주 교육을 하는 걸 다른 학교들이 못 할까요. 우리 특유의 "옆 학교는 어떻게 하는데?"는 언제든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교우위가 이내 사라지면서 모든 학교가 입시위주 교육을 하는 모습만 남습니다. 이제 새로운 비교우위가 필요합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밤 10시나 11시까지 방과후 교과 보충수업을 하면, 새벽 1시까지나 등교 전에 학원으로 향합니다. 온라인 사교육도 있고, 개인 과외도 있고, 기숙형 학원도 있습니다.
정규 수업시간에는 '수준별'과 '맞춤형'이라는 이름 하에 차별적인 교육을 받고, 방과후에는 교장, 교사, 외부 학원 강사, 외부 사교육 업체나 알선 업체로 흘러들어가는 돈을 내면서 교실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나와서는 사교육을 받습니다. 풀리기는 커녕 더 심해지는 병목 구간 앞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몸과 마음만 힘들어질 뿐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한 손으로 사교육 수요를 늘리기 바쁘고, 한 손으로 공급을 대체하는 그림만 그립니다. 이 때 학원을 학교로 대체하는 건 학교를 학원으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사교육 없는 학교'는 '공교육 없는 학교'로 불러야 합니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필요한 건 수요 확대와 공급 대체의 엇박자 결합이 아니라 수요 해소와 공급 대체(또는 규제)의 결합입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가 아니라 '다양한 평준화' 또는 '개성있는 평준화'가 해법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