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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학원 안다녀도 유학간 사나이

리첫 2009. 5. 27. 22:08

민사고(민족사관고) 또는 외고 + 부모의 재력 + 사교육= 미국 명문대 유학.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의존형 유학’의 공식이다. 유하림(20)씨는 지난해 새로운 유학의 공식을 만들었다. 일반계고 + 부모의 노력 + 독학= 미국 명문대 유학. 이른바 ‘자기주도적 유학’이다. 유씨는 유학반도 국제반도 없는 일반계고, 단국대사범대부속고를 다녔다.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았다. 1998년 구제금융 시기에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은 뒤부터다. 재력은 부족했으나 부모님은 유학원과 어학원을 대신해 유씨의 유학 파트너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대학에 지원할 때 요구되는 토플(TOEFL)과 학업적성시험(SAT·Scholastic Aptitude Test) 준비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했다. 원서를 쓰고 접수하는 일도 유학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했다. ‘자기주도적 유학’은 통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노스웨스턴대학교에 입학했다. 해마다 미국의 대학과 대학원을 조사해 순위를 매겨 발표하는 ‘유에스 월드 앤 리포트’라는 언론사 자료에 따르면 노스웨스턴대학교는 2500여 곳에 달하는 미국의 4년제 대학 가운데 12위로 꼽히는 최상위권 대학이다. 학비와 생활비는 ‘관정이종환 장학재단’에서 받는다. 유씨의 자기주도적 유학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국에 있는 유씨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 영어는 기본 자기주도적 유학의 기본은 진학을 원하는 나라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다. 유학원의 힘을 빌리지 않은 유씨는 직접 미국 대학의 누리집에서 정보를 얻었다. 의문 나는 점이 있을 때는 대학의 입학 담당자와 이메일로 소통했다. 또한 그한테 가장 유용한 정보를 준 곳은 미국의 학생들도 대학 갈 때 참고하는 누리집이었다. 미국 학생들의 대학 선택을 돕는 누리집(collegeconfidential.com)에서 만난 미국 친구는 그의 에세이를 두 번 정도 첨삭해주기도 했다.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없는 영어 실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듣고 말하는 능력도 필요했다. “15군데 원서를 냈는데, 원서가 도착하지 않아서 다시 보낸 일도 있어요. 시차를 계산해서 일일이 전화를 해서 담당자한테 확인을 받아야 했죠.” 물론 이런 전천후 영어 실력은 학원에서 쌓은 게 아니다. 자기주도 학습의 결과다. 그는 어학원에 다니는 대신 영어를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고안했다. “저한테 영어를 가르쳐 준 건 미국 드라마와 오디오북이에요. 하루에 한 편씩 미국 드라마를 꾸준히 봤고 시간 날 때마다 오디오북을 들었죠.” 미국 교과서나 영어 원서 소설 등의 책도 틈나는 대로 읽었다. 고2 때는 영어로 된 <삼국지>를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어학원에서 문제 유형을 익히고 시험 기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그는 처음 본 학업적성시험에서 2000점(2400점 만점. 독해 800점+수학 800점+에세이 800점)을 받았다. 영어를 시험 과목이 아니라 언어로서 스스로 터득한 내공 덕이었다. 그의 토플(iBT) 성적은 117점(120점 만점. 독해 30점+듣기 30점+말하기 30점+쓰기 30점)이다.

 

■ 학교는 중심 자기주도 학습의 중추는 학교다. 유씨의 유학도 마찬가지다. “사실 미국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고등학교 내신 성적(GPA)이에요.” 여느 우등생들처럼 그도 수업 시간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몰입했다. 수업 앞뒤로 5분을 활용해 예·복습을 하는 그의 방식은 자기주도 학습의 전형이었다. “영어랑 에스에이티를 준비할 시간이 늘 필요했어요. 그 시간을 벌려면 내신은 반드시 학교 수업에서 끝내자는 생각이었죠.” 덕분에 유씨는 매일 한 편씩 보던 미국 드라마를 시험 때도 거르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는 늘 전교 5등 안에 들었다.

 

유씨는 유학 준비도 학교에서 해결했다. 아침 0교시부터 야간 자율학습까지 모든 시간이 그한테는 유학 준비를 위한 귀한 시간이었다.

 

교사들한테서는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입학원서의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영어 선생님과 국어 선생님한테 자문했다. “영어로 쓴 뒤에 영어 선생님께 여쭤보고, 그걸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서 국어 선생님과 내용적인 부분을 토론하기도 했죠. 유학 와서 보니까 원서 하나에 1500만원씩 들었다고도 하는데 차라리 그런 사정을 몰랐던 게 다행이에요.” 공교육이 학생들의 유학에 직접적인 지원을 할 책임이나 의무는 없다. 그러나 유학은 공교육의 울타리 안에서도 가능하다.

 

» 각국 유학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누리집
■ 부모는 파트너 유씨한테 부모님은 유학원이나 어학원만큼 좋은 파트너였다. 아버지 유영신(56)씨는 “하림이는 영어로 된 사이트를 주로 찾고 나는 우리말로 된 사이트를 찾았다”며 “유학에 대해 반은 전문가가 될 정도”라고 말했다. 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진 못했지만 어찌 보면 그보다 실용적인 도움을 준 셈이다. 유영신씨가 그동안 유학에 관해 찾은 정보들을 모아놓은 누리집(blog.naver.com/y5304923)도 있다. 유씨 역시 유학 준비 과정을 기록해 둔 누리집(blog.naver.com/jamesyhr)을 운영한다.

 

유씨는 환경운동연합에서 봉사활동을 구할 때도 아버지와 함께 나섰다. 결국 그는 환경운동연합에서 영어 번역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그게 인연이 돼 유엔 산하의 환경단체인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개최하는 국제 콘퍼런스에 우리나라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유씨는 3학기로 운영되는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1, 2학기 내내 우등생(Dean’s List)으로 뽑혔다. 수강했던 7과목 가운데 6과목에서 A를 받았다. 유영신씨는 “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가서 적응 못하고 힘들어하는 유학생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잘해주니 정말 감사하고 기특하다”며 “뭣보다 스스로 유학을 준비하면서 쌓은 실력이 이런 결과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