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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 사립고 포장 벗기면 결국 입시명문고

리첫 2009. 6. 9. 09:10
교과부가 "추첨에만 의존해 학생들을 뽑으면 우수 학생을 유치할 수 없고, 이는 결국 자율형 사립고의 설립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사학들의 볼멘 소리를 받아들여 내신 성적 기준으로 50% 이상에서 학교가 응시 자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애초 응시자격 제한이나 입학 필기시험은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고 원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학교장 추천이나 학교생활기록부, 면접으로 정원의 3~5배수를 뽑고서 추첨하는 방식을 전형 모델로 제시했는데 사학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여 기존 방침을 바꾼 것이다.

 

서울대나 연고대 등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응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서 중학교 내신 성적 50%를 원서 접수 자격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자율형사립고 포장을 벗기면 결국 입시명문고

 

교과부와 청와대는 자율형사립고에 대해서 학생 선택권 확대와 학교 다양화라는 포장으로 정당화하려 한다. 이렇게 학생을 선점하는 학교를 많이 만듦으로서 다양한 교육이 가능해지고,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발표로 거짓임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한 학교들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다양한 교육과정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공부 잘하는, 부자 학생들을 유치할 것인가인데 교과부가 여기에 부화뇌동한 것이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특별한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 교육과정에 영어와 수학 같이 대학 입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구색 맞추기로 다른 과목들을 끼워 넣은 정도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과부 발표대로 내신 성적 50%로 자율형사립고 지원 자격을 제한하면 중학생 절반은 원천적으로 자율형사립고 지원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이렇게 상위 50% 내에서 지원받은 학생들 중에서도 각 학교마다 자체적으로 면접 등을 통하여 2~3배수 정도로 압축하고 이 중에서 추첨을 통하여 최종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많이 잡아야 상위 30% 정도의 학생들만 최종 추첨 과정에 살아남아 결국 입시명문고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이번에 교과부가 발표한 자율형사립고 전형계획은 성적 상위 30% 정도의 학생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도록 한 것이다. 사학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가려뽑아서 입시 명문고를 만들겠다는 것이고, 교과부가 이를 조장하고 나선 것이다. 특목고 과외와 함께 여기에 들어가기 위한 중학생 사교육이 판을 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교과부는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초 사교육비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전형 절차를 확정하지 않고 우선 자율형사립고 신청부터 받도록 했다. 그리고 각 시도교육청별로 수많은 학교들이 신청서를 접수하여 이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이후에야 내신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여 성적 우수 학생들에게만 기회를 주는 안을 발표하였다. 정부가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이중플레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게 되었다.

 

등록금 웬만한 대학교 등록금 상회, 학부모는 봉인가?

 

자율형사립고가 되면 교육청에서 지원되는 재정결함보조금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를 학생등록금 인상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현재 재정규모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계산해 보면, 신청 학교들은 등록금을 평균 3배를 인상하여야 한다. 자율형사립고가 될 경우 학부모들은 등록금만 현재의 3배를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율형사립고가 되면 현재보다 재정규모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등록금 인상율은 이보다 높을 것이다.

 

  
대부분의 자율형사립고 신청학교들이 현재 등록금의 3배 내외를 인상하여 웬만한 대학 등록금과 맞먹는다. 결국 소수 특권층을 위한 귀족학교로 귀결될 것이라는 비판을 낳는 이유다.
ⓒ 김행수
자율형사립고

 

학교별로 보인고 7.6배(8.6배 : 괄호 안은 수익자부담 경비 포함), 장훈고 4.4배(5.0배), 덕성여고 3.8배(4.4배), 경문고와 계성여고 3.2배(3.8배)를 인상해야 현재 수준의 재정 규모를 유지할 수 있으며, 미림여고, 대광고, 동성고, 대원여고, 대성고 등 12개교가 등록금만 3배 이상(3.5배)을 인상해야 재정결함보조금 누락을 보충할 수 있다.

 

09년 기준 서울고등학교 1인당 등록금은 한 분기에 수업료 36만 2700원이고, 여기에 학교운영지원비 8만 4300원을 합하면 44만 7000으로 1년 178만 8000원인데 자율형사립학교의 등록금 3배로 계산하면 1년 공식 등록금만 536만 4000원인데 이것만으로 웬만한 대학 등록금이다.

 

여기에 보충수업비, 수학여행비 등 수익자 부담 경비를 합하면 700~1,000만원에 이를 것이다. 이는 국립대학뿐 아니라 보통의 사립대학의 등록금보다 비싼 것이다. 이만큼의 지불하면서 자율형사립고를 갈 학부모들이 과연 대한민국 상위 몇 %일까?

 

완성되는 고교 서열화 체제와 고교 입시부활

 

등록금 3천만원짜리 국제학교와 외국인학교, 등록금 5백~1천만원짜리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 자립형사립고, 학교선택제에서 살아남은 소위 명문고, 등록금 150만원짜리 일반고교,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지방고교와 전문계고로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등급이 매겨진 체로 서열화가 완성되고 있다. 귀족학교, 평민학교, 천민학교로 서열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기존의 특목고 부담에 이어 자율형사립고와 국제학교 부담에 시달려야 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맞먹는 등록금 부담뿐 아니라 이들 선택받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비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 그야 말로 학생과 학부모는 학습부담과 사교육비라는 이중 삼중의 고통에 허리가 휠 판이다.

 

교과부는 지난 2일 사교육비 경감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그 중의 하나로 사교육영향평가제라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규모 개발 공사를 할 때 사전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여 이를 사업에 반영하는 환경영향 평가제를 모방하여 어떤 교육정책을 수립할 때 그것이 사교육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 평가하여 정책 결정에 반영한다는 제도이다.

 

교과부는 과연 이 자율형사립학교 정책을 수립하는데, 아니 당장 이번에 발표된 자율형사립고의 지원 자격을 내신으로 제한하는 것을 확정할 때 사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보았을까? 결국 교과부는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휘는 학부모와 학습 부담에 고통받는 학생들을 외면하고 성적 우수한 학생들만 가려뽑아야겠다는 일부 사학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입으로는 학교 다양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을 반복하지만 실제로는 사교육비 폭증을 가져올 자율형사립고를 만들고, 나아가 내신성적으로 지원자격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 있는 현재의 교과부이다. 다양화라는 포장 속에 입시명문고와 귀족학교로의 귀결이라는 속내를 숨기고 있는 교과부와 서울시교육청, 일부 사학들은 국민을 속이는 이중플레이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