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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7살에 대학에 들어간 경위

리첫 2009. 7. 6. 11:48

한겨레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당당히 ‘특목고’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노라며 혼자서 나름대로 열심히 영어, 수학 등을 공부했다. 그러나 진입 장벽은 높았다. 중 3때인 2007년 10월 말, ㄱ외고에 지원했으나 탈락하였다. 여기까지라면 내가 실력이 모자라서 탈락했겠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인 11월 초에 불거진 한 외고의 입시부정 사건은,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나에게 우리 사회의 권력계층, 보수 기득권 집단에 대한 총체적인 회의감 같은 느낌을 안겨주었다.
 

사교육 안받고 특목고 가리라

 

이런 충격과 혼란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일반고’에 진학해서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기도 하다가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는 식으로 살아갈 나를 생각하니 김명수 시인의 ‘하급반 교과서’에 나오는 전체주의에 길들여진 불쌍한 아이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초강수를 두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때, 담임선생님은 물론 주변의 거의 모든 어른들께서 반대하셨지만, 나는 자주적인 결정과 행동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설령 그 결정이 시행착오일지라도 그것을 거울삼아 다음에는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결국은 고등학교 배정 발표 당일, 해당 고등학교에 찾아가 미진학 처리하였다.

 

낙방 뒤 외고 입시부정 터져

 

그 뒤 나는 보수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현 정부가 ‘1%를 위한 대입정책’을 마련하기 전에 빨리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먹고, 2008년 한 해 동안 친구들과 연락조차 거의 단절한 채, 그해 수능을 목표로 공부하였다. 1년 동안 수능을 치르기 전까지 가족을 제외하고 얼굴을 마주친 사람은 검정고시 고사장의 사람들이 거의 전부일 정도로, 중 3때 ‘겁 없는 도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고 반성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수능성적은 예상보다 좋아서 외국어영역 백분위가 무려 97이었고, 사회탐구 영역 세계사에서는 모든 문제를 맞히는 등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한 성적이었다.그리고 지금, 17살이 된 나는 서울의 한 4년제 사립대에 09학번으로 입학해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쯤 되면 무슨 자기 자랑 늘어놓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핵심은 ‘저는 고등학교 건너뛰고 대학 붙었습니다’ 이게 결코 아니다. 핵심은, 모든 공부의 과정이나 복잡한 대학지원 과정을 전부 순수하게 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냈다는 데 있다.

 

입시경쟁틀 거부 고교등록 안해

 

부모님께서 내가 수학에 약하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수학만이라도 단과학원에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학원에 가면 그저 이거 외워라 저거 외워라 할 것이 뻔했고, 나는 그런 형태의 주입식 교육을 상당히 싫어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성의만 받고 학원은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복잡한 대학 지원 과정 …, 나는 수능이 끝날 때까지도 가, 나, 다군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대한민국 모든 고 3학생들이 받는다는 ‘담임 상담’을 받은 적도 없었다. 모든 지원 과정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는 등 스스로 처리해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학기가 지나간 지금,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평범하게 진학했더라면 타성에 젖어 하나의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줄 모르는 불운한 ‘이 시대의 학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장문기 경기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