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교육계의 아마추어리즘

리첫 2009. 8. 24. 12:06

미래형 교육과정의 아마추어리즘 / 이범
한겨레
» 이범 교육평론가
나는 기존 7차 교육과정을 옹호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7차 교육과정의 과목 편제와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 또한 나는 전인교육을 위해 예체능과 기술·가정 과목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음악·미술·체육 교사들이 단결해서 ‘우리만이라도 상대평가의 굴레를 벗겨달라’고 주장하거나 기술·가정 교사들이 ‘실습 중심 교육을 하게 해달라’고 시위하는 걸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이렇게 냉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미래형 교육과정을 추진하는 핵심 인물들과 대화할 기회를 가지면서 또다른 절망감이 극에 달함을 느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진단과 처방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모른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학교와 학생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아마추어이다.

 

미래형 교육과정의 결과 국영수 시간이 늘어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수능과 일제고사가 모두 국영수 중심인데, 그 성적이 공개되고 교장들이 여기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학교별로 부여되는 자율권이 국영수 수업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국영수 시간의 증가가 이들이 원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냐는 것이다.

 

미래형 교육과정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초중고 교육을 거쳐 진학한 대학생들이 한마디로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지식’과 ‘역량’이라는 두 측면으로 분류 가능하다. ‘지식’의 측면에서 가장 유명한 문제는 ‘미적분 모르는 공대생’이다. 일부 과학과목의 지식도 부족하다고 지적된다. 그런데 이게 문제라면, 수능에서 미적분(수리 ‘가’형 또는 심화미적분)이나 물리Ⅱ 등을 의무화시키면 된다. 즉 대학 전공별로 필요한 과목(들)을 ‘지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엉뚱하게 교육과정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역량’의 측면에서 대학생들이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것은 자기주도 학습능력, 작문 능력, 추론·논증 능력 등 다양하다. 그런데 첫째로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떨어진 것은 학원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지, 교육과정 탓이 아니다. 학원만 다녔을 뿐 자기 학습을 계획하고 관리하고 평가해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대학 문턱을 넘는 순간 갑자기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가지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작문 능력이나 추론·논증 능력은 현재의 주입식 교육 패러다임 속에서는 국영수 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결코 좋아지지 않는다. 늘어난 시간이 대학 공부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기보다는, ‘지식’을 머릿속에 구겨넣거나 기껏해야 객관식 문제풀이를 하는 데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탐구와 토론을 늘리고 발표와 작문 능력을 키울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자면 교육과정보다는 시험방식을 손보는 것이 우선이다. 내신시험과 수능을 객관식·단답식에서 서술형·논술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대입시험 자체가 서술형·논술형이거나(영국의 A-레벨,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일본의 본고사), 내신교육이 주입식에서 벗어났음을 전제로 내신성적을 반영한다(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7차 교육과정도 사실은 아마추어들의 작품이었다. 이들은 문·이과 구분이 없어지고 다양하고 유연한 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미래형 교육과정도 아마추어들이 주도하고 있음이 확인된 이상,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범 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