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독서교육 10계명’이라는 게 있다. ①꾸준히 읽어줘라. 평균적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읽기 능력보다 듣기 능력이 더 좋고, 부모가 읽어주는 모습이 아이에게 여러 모로 자극이 된다. ②집에 책을 많이 ‘늘어놓아라’. 친척이나 지인의 집에 있는 묵은 책을 차떼기로 실어오거나, 옥션에서 중고 전집을 구입하는 따위의 방법으로 비용을 절약하라. ③줄거리 확인이나 요약 과제 등으로 부담을 주지 말라. ④강도 높게 칭찬하라. 책을 읽고 있을 때에는 절대로 방해하지 말고. ⑤스토리가 없는 읽을거리(도감·지도·잡지·신문 등)도 중요하다. ⑥관심 있는 영역에서는 또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도 접하게 하라. 연령별 권장도서 목록 등에 집착하면 오히려 지적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⑦학습만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⑧아이의 스타일을 존중하라. 아이에 따라 정독파·반복파·다독파 등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정답은 없다. ⑨책보다 재미있는 것(컴퓨터·게임기·텔레비전 등)은 집에 아예 두지 말거나, 적어도 확실히 통제하라. ⑩부모가 뭔가를 읽는 모습을 되도록 많이 보여주는 게 좋다.
열 가지 가운데 학부모로부터 가장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세 번째이다. 많은 학부모가 ‘읽은 것을 이해했는지를 물어봐야 확인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어떤 아이는 나불나불 잘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많다. 천성적으로 그런 거 말하기 싫어하기 때문인 경우도 있고(나의 경우가 그랬다), 대다수 아이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비해 ‘말이나 글로 표현해낼 수 있는 수준’이 처지기 때문에 말로 옮기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사람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을 다 읽어내는 게 가능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소설책을 읽을 때 중간부터 사건과 인물들 간의 관계가 머릿속에서 꼬이고 엉키기 시작하면, 대개 그 소설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는가? 아이가 책을 다 읽었다는 것은 적어도 70% 이상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책을 붙들고 읽어내는 아이는 없다.
학습만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일곱 번째로 지적한 ‘학습만화’의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학습만화 대국이다. 전반적인 만화의 수준이나 판매량은 일본이 최고로 꼽히지만, 그중 학습만화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 할 만하다. <Why?> <마법천자문> <살아남기> 시리즈 등 블록버스터급만 해도 꽤 여러 가지이다. 그런데 많은 독서교육 전문가가 만화를 기피하도록 만든다. 줄글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든지, 깊이 있는 글을 읽고 사고하는 데 방해가 된다든지, 그림이 다 나와 있어서 상상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든지 등등 나름의 근거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견해에 반대한다. 한국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해볼 때, 만화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
|
|
ⓒ이우일 그림 |
왜냐고? 각종 국제 교육지표 조사를 해보면, 한국 학생들의 특징이 뚜렷하다. 학력(학업성취도)은 1위를 다툴 정도로 높은데, 학업흥미도나 학습자신감은 최하위권이다. 미국 명문대에 들어간 한국계 학생(유학생과 교포 포함)의 중도탈락률이 44%나 된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지난해 발표된 적이 있는데, 이것은 한국식 교육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핀란드 교육이 세계 최고인 것은 학력만 최고여서가 아니라 학업흥미도도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와 학원에서 모두 재미없는 주입식 교육이 고강도로 이뤄지는 한국에서, 학습만화는 아이들이 ‘지식이 재미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산소호흡기 같은 구실을 한다. 우리나라가 학습만화 대국이 된 이면에는, 학업흥미도 최하위라는 슬픈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학습만화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독서 10계명 가운데 열 번째, 즉 부모가 뭔가를 읽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유리하다. 회사 일이나 집안일을 끝내고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어려운 책보다는 만화를 집어드는 게 수월하지 않겠는가? 나도 가끔 복습 삼아 <먼나라 이웃나라>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의 만화를 다시 읽곤 한다.
출처:시사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