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급수’ 따서 뭐 할 건데? | |||||||||||||
한자 급수가 10년쯤 뒤에도 취업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적다.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도 한자 ‘급수’가 아니라 한자에 대한 ‘감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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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급수를 따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대입과 취업에 유리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자를 공부하는 것이 여러 과목의 공부에 두루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보자. 일단 취업에 유리하다는 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많은 기업에서 일정 급수 이상의 한자 검정을 ‘스펙’의 하나로 반영한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가 얼마나 유지될까? 한자 급수가 10년쯤 뒤에도 취업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어나 일본어 구사능력이라면 모를까, 한자 급수는 냉정하게 봤을 때 업무능력과 별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에서 한자 급수를 요구하는 것은 기업 임원진이 한자에 익숙한 세대인 탓이 크다. 세월이 흘러 이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됨에 따라, 신입사원에게 한자 급수를 요구하는 관행은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자가 여러 과목의 공부에 두루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고찰해보자. 실제로 학교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개념어가 한자어로서, 한자로 뜻을 풀이해보면 개념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과학 과목에서 ‘수온약층’이라는 용어를 배우게 되는데, 이것은 바다에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보면 수온이 급격히 낮아지는 구간을 일컫는 말이다. ‘수온약층’의 ‘약’(躍)자가 ‘도약’을 의미하는 것임을 이해한다면, 수온약층의 의미는 자연히 이해된다. 한자의 ‘감각’을 키우는 방법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정해진 한자를 외워서 쓰고 부수까지 익혀 급수를 따야 할까? 결국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한자 ‘급수’가 아니라 한자에 대한 ‘감각’이 아닐까? 예를 들어 한자 급수를 열심히 따는 것보다, 과학 시간에 배우는 ‘수온약층’과 미술 시간에 배우는 ‘추상/구상’과 체육 시간에 배우는 ‘구기종목’ 따위 용어가 각기 무슨 한자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통해 개념에 대한 이해와 한자에 대한 감각을 동시에 익히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자에 대한 감각이 충분히 익혀진다면, 별도로 공들여서 한자 급수를 딸 필요는 없다.
마침 과목별로 배우는 한자어를 통해 한자의 ‘감각’을 익히도록 도와주는 책이 나와 있다. 초등학교 학년별로 <초등교과서 단어의 비밀>과 <공부 잡는 어휘왕>이 출간되어 있고, <개념 교과서>도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때그때 배우는 새로운 한자어를 사전을 통해(국어사전과 옥편을 병용해야 하므로 인터넷 사전이 훨씬 효율적이다)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한자 감각을 익히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나치게 어렵지만 않다면 영어 어휘를 병행해 익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록수’를 배우면서 常綠樹와 evergreen을 같이 익히는 것이다.
출처:시사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