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 9년간을 의무교육 기간으로 정해 놓았다. ‘의무’라고 점잖게 번역해 놓기는 했으나 영어로 ‘compulsory’, 즉 ‘강제’ 교육에 해당한다. 의무교육 기간 동안 특별한 사유 없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는 처벌받을 수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교육시키는 학부모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로 부모가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집으로 경고장이 날아들고, 교육청과 동사무소에서 실태조사를 나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잠깐. 귀한 자녀를 학교로 보내도록 ‘강제’해 놓았으면, 그 대신 뭔가를 해줘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일단 학교를 다니면서 돈이 들지 않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헌법 31조 3항에는 아예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디까지 무상으로 보장되어야 하나? 몇 가지 설이 있으나, 수업료뿐만 아니라 급식, 교과서, 학용품 등까지 무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밥값 따위를 걷어서는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력을 갖춘 나라 중에서 의무교육 기간 중에 급식비를 학부모에게 부담시키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자녀를 ‘강제’로 학교에 보내 놓았으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최저 학력을 보장해야 한다. ‘학력’이라고 하니까 일제고사 점수를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학력이라는 것이 객관식·단답식 문제에 답하는 능력으로 환원되는 개념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영어를 몇 년 배웠는데도 영어로 자기소개를 못한다면, 이건 분명히 학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태까지 이런 문제의 원인을 학생 탓으로 돌리거나(‘머리가 안 돌아가서’), 부모 탓으로 돌려왔다(‘학원에 안 보내서’). 그런데 ‘강제’ 교육을 보내놓은 결과를 학생이나 부모가 책임지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건 당연히 학교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유럽의 교육 선진국들에서는 의무교육 기간을 마치는 시점에 일정 수준의 학력에 이르도록 아예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기초 학력을 책임지려면 제도의 정비와 학교 문화의 혁신도 필요하지만, 학급당 학생 수와 같은 기본적인 여건도 호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학급당 학생 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엄청난 과밀학급이다. 초등학교는 평균 21.5명인데 우리나라는 32.6명, 중학교는 평균 24.1명인데 우리나라는 35.7명이다.(2005년 기준) 수도권 일대에는 학급당 45명에 육박하는 지역이 즐비하다. 이런 여건에서는 학생들 개개인의 구체적인 성취도를 꼼꼼히 체크하고 일정 수준 이하인 학생들에게 일상적인 보완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0월부터 국회가 국정감사에 들어간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을 못마땅히 여기는 이들이 경기도 교육청 감사를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것이다. 김상곤 교육감이 추진했다가 도의회의 반대세력에 의해 가로막힌 ‘무상급식’과 ‘혁신학교’라는 양대 사업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당연한 국가의 의무인데 중앙정치권에서 이를 법률화시키지 않은 바람에 이 소동에 이른 것이고, 혁신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 그네들이 툭하면 강조하는 ‘기초 학력’을 제대로 책임지는 모범적인 학교모델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닌가? 김상곤 교육감이여, 정면으로 맞받아치시라. 다름 아닌 ‘헌법’이 당신을 지지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