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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신체지능만 높다면 성공 못했죠

리첫 2009. 9. 28. 18:00

암기식 교육과 창의력 ‘끄집어내기’ 병행해야
“교과과정 위주 초중고서 다중지능 발견 어려워”
한겨레 김창석 기자
» 문용린 서울대 교수




 
 
‘지력혁명’ 개정판 낸 문용린 서울대 교수
 

학창 시절 공부 못하던 친구가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했다는 사연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얘기다. 반대로 학교 다닐 때 전교 1, 2등을 다투던 친구가 지금은 별볼일없이 산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례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까. 문용린(62·교육학·사진) 서울대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분명히 다중지능이론을 꺼내들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지니고 있는 특정 영역에서의 지능이 지능의 전부가 아니며, 학교 성적이 나쁘더라도 다른 영역의 지능이 높으면 어떤 분야에서라도 사회적 성취를 얻을 수 있다.

 

다중지능이론은 1980년대 미국 하버드대 교육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주창한 것이다. 인간의 지능은 모두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언어, 논리수학, 음악, 공간, 신체운동, 인간친화, 자기성찰, 자연친화 등이다. 20세기 초에 개발돼 인간의 지능을 평가하는 데 쓰였던 도구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던 지능지수(IQ)이론을 극복한 이론으로 평가받는다.

 

문 교수가 다중지능에 관한 강의를 시작한 것은 15년 전인 1994년이다. 그 이후 다중지능이론을 한국에 소개한 첫 대중서인 <지력혁명>을 쓴 그는 최근 개정판(비즈니스북스 펴냄)을 냈다. <함께하는 교육>과의 인터뷰를 위해 지난 22일 연구실에서 기자를 만난 문 교수는 “2004년 이후 5년 동안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개정판에 녹이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축구선수 박지성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멈추지 않는 산소탱크’라는 별명을 지닌 박지성에게 신체운동지능은 여러 지능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문 교수의 분석이다. 축구처럼 다른 사람과의 협동이 중요한 경기에서 인간친화지능이 부족했다면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 네덜란드, 영국으로 자신의 활동 무대를 계속 옮겨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해야 했던 박지성으로서는 더욱 그랬을 터이다.

 

“인간친화지능은 단순히 털털하고 개방적인 성격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생기는 다양한 문제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잘 해결했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초등학생들이 하는 축구를 보세요. 무조건 뛰기만 한다고 됩니까. 자기친화지능이 높은 아이는 패스를 받아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공을 찰 기회가 그만큼 더 많은 거죠.”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지는 것이 박지성의 자기성찰지능이다. 문 교수는 “박지성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꿈과 목표, 끊임없는 노력, 포기하지 않는 집념, 자신에 대한 믿음이 발견된다”고 했다. “박지성은 브라질의 둥가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죠. 고등학교 때 축구 관련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축구관을 세웠던 거예요. 둥가는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않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어요. 박지성과 닮아 있어요.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능력이 없다면 육체적으로 감내하기 힘든 고된 훈련을 견딜 수 없지요. 그런 지능은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한테서도 발견됩니다. ”

 

그는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강점 지능을 적절히 조합하면 자신의 적성이나 직업적 전망을 어느 정도 내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말을 잘하고 표현력도 있으며 친근한 개그맨의 경우는 언어지능이 뚜렷한 강점이고, 여기에 신체운동지능과 인간친화지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싱어송라이터는 음악지능에다 언어지능과 자기성찰지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디자이너는 공간지능에 자기성찰지능과 인간친화지능이 뒷받침되어야 이상적이다.

 

서울대 교수인 그가 보는 서울대생들은 다중지능의 측면에서 균형적인 발달을 이뤘다고 볼 수 있을까. “서울대생들은 여덟 가지 지능 가운데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이 발달한 그룹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 성공까지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졸업 후에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비율은 30% 정도 아닐까요. 인간친화지능이나 자기성찰지능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가장 필요로 하는 지능이 결여돼 있다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봐야겠죠.” 국영수가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법하다.

 

그는 다중지능이론이 한국 교육에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적 메시지를 ‘집어넣기 교육’과 ‘끄집어내기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요약한다. “암기식으로 외우는 교육이 집어넣기 교육입니다. 교과목의 지식을 가장 경제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이 외우고 이해하게 한 후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서는 곤란합니다. 배운 것을 활용해서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는데 계속 집어넣고만 있으니까 창의력이나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교육과는 자꾸 멀어집니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참여하고 자기가 선택하는 수업활동이 끄집어내기인데 이 부분이 커지도록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적성이나 재능을 찾아낼 때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마다의 지능이 다른 곳에 있는데 부모들은 아이들의 학교 성적에만 신경을 쓰죠. 부모들은 아이들의 지능 가운데 상위 10%에 드는 영역을 사려 깊게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이를 위해 그가 강조하는 것은 초·중·고등학교 교육의 다양화다. 초·중·고등학교가 학생들의 적성과 특기들을 찾아주고 길러주는 구실을 전적으로 도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학교 교육을 보면 교육과정은 없고 교과과정만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학생들의 다중지능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나 지역사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로 볼 때 학교가 전적으로 나서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국가가 나서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하지 않으면 우리 교육이 진보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김창석 기자 kimcs@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