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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꼴찌’도 다른 능력 인정하고 키워줘

리첫 2009. 10. 12. 13:47

‘공부 꼴찌’도 다른 능력 인정하고 키워줘
대학전까지 무상교육…대학생엔 국가가 용돈
소득격차 작아 직업학교 나와도 스트레스 없어
한겨레
» 네덜란드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의 악기 교육을 시청이 세운 음악 교육 기관에서 제공한다. 소득에 따라 수강료가 차등 책정되므로 소득이 낮은 가정의 자녀도 적은 돈으로 악기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사진은 정현숙씨의 딸 박시은(8)양이 네덜란드의 학교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 정현숙씨 제공
“네덜란드는 정말 아이들한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에요.”
 

네덜란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정현숙(46)씨의 목소리는 금세 높아졌다. “2007년에 유니세프가 전세계 부유한 나라 21개국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행복감을 조사했더니 네덜란드가 1등을 했대요. 학생들 사이에 경쟁이 심한 미국이나 영국은 꼴찌였죠.”

 

네덜란드 교육에 대한 그의 찬사는 경험에서 비롯됐다. 1998년에 남편의 공부를 위해 다섯 식구 모두 네덜란드로 떠났다. 세 아이는 네덜란드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녔고 큰아들은 대학에도 갔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곧 네덜란드의 교육 제도와 네덜란드 사회를 익히는 일이었다. 초등학교에 두 아들을 입학시키자 곧 학생의 교육을 학부모한테 떠넘기지 않고 학교가 책임지는 모습이 보였다. “네덜란드 초등학생들은 가방이 없어요. 그냥 빈손으로 학교에 가요. 교과서는 학교에 두고 다니게 되어 있고 준비물은 학교에서 모두 지급해 주니까요.” 네덜란드의 교육은 중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무상교육에 가깝다. 대학은 300만원 정도의 등록금이 있지만 국가가 한 달에 학생 개인한테 40만~50만원씩 용돈을 준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파격적인 지원이 가능한 것은 네덜란드의 경제력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는 덕이다. 네덜란드는 인구가 우리나라의 3분의 1 규모(1600만명)이면서도 경제 규모는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08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9470억달러, 네덜란드는 8689억달러로 큰 차이가 없다. 일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우리나라의 두 배에 이른다.

 

정씨는 네덜란드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뭣보다 자기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직업을 갖든 편견에 위축될 일이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 중에 직업준비중등학교(VMBO)로 가서 벽돌공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벽돌공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일하는 모습을 본 거죠.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높아요. 대학교수나 벽돌을 까는 일 모두 아무나 잘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 거죠.” 네덜란드 한국 교민들은 그래도 제일 높은 레벨인 대학준비학교(VWO)에 보내려는 욕심이 있지만 정작 네덜란드 학부모들은 자녀가 어느 레벨의 중등학교에 진학해도 수용한다고 한다.

 

이는 곧 벽돌공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도 큰 이유다. 즉, 네덜란드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임금 격차가 그리 크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양극화가 심한 사회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09년 통계연보를 보면 네덜란드 최하위층의 평균소득은 30개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데 견줘 우리나라는 23번째였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버는 빈곤층의 비율 역시 네덜란드는 7.6%(20위)로 적었으나, 우리나라는 14.6%로 두배에 이르렀다.

 

문화방송(MBC) 기자 출신인 정씨는 네덜란드에서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았다. “98년에 아이들을 처음 네덜란드 현지 학교에 보냈더니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네덜란드어 강습반을 만들어서 지도해 줬어요. 이런 게 네덜란드식 관용의 문화인 것 같아요. 공부 못하는 아이들한테도 다른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동등하게 대접해 주는 것도 관용이고요.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진명선 기자 ed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