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연구년'(창조를 위한 재충전이 아니라 집중연구와 생산력을 강조하는 요즘 한국의 대학가에서는 '안식년'이라는 낭만적인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을 맞아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다. 교내외 기관의 지원을 받는 연구과제 2개를 수행하며 국가기관이 후원하는 해외한국학 파견교수 자격으로 이곳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때로는 다소 쓸쓸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해외체류근무(?)를 고맙고 소중하게 체험하고 있다.
조그만 대학촌에 정착한 지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오늘은 그동안 내가 단편적으로나마 관찰했던 우리 업계(대학/인문학) 이야기를 몇 가지 해 보려고 한다.
첫째, 소위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적 상황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혹은 최소한 네덜란드도 예외가 아닌) 현상인 것 같다. 내가 방문한 대학에서도 수강생이 적거나 인기 없는 인문학 분야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작년에 40여 명의 교수들이 직장을 잃었고 수업과목도 많이 축소되었다.
관련 연구소들도 시장경제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이슬람국제연구원은 폐쇄되었고 나의 공식초청기관인 <동양학국제연구원(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Asian Studies)>도 얼마 전 좀 더 협소한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옛 빌딩에서 혼자 연구실을 사용하던 호사를 누렸던 나는 다른 방문교수와 함께 연구실을 공유하게 되었으니 그 불똥이 나에게도 튄 것일까.
둘째, 네덜란드 동업자 교수들은 좀 더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연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연구/교육조교의 도움에 많이 의존하는 한국의 대부분 대학교수들과 달리 이곳 교수들은 온갖 잡무와 행정업무를 스스로 감당해야만 했다. 개강 전에 학과사무실에 들러 출석부를 얻고, 필요한 참고서적을 도서관에 예약하고, 수업자료를 복사하여, 행정실에서 해당 강의실 열쇠를 수령하고서야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해진 연봉 외에는 부수입원이 원천적으로 거의 없다. 다른 대학에서의 특강은 품앗이 형태로 진행되었고 일반인 대상 교외 강연은 지식인 사회봉사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한국의 '이름 날리는' 일부 교수들이 대기업 '자문/고문역'과 '사외이사' 등과 같은 빛나는 명함을 새겨 정규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는 횡재는 이곳에서 불가능하다. 같은 역사업계에 종사하는 네덜란드 동료학자는 "우리는 한국처럼 (영어)논문 아무리 많이 발표해도 보너스 한 푼 없다"고 푸념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교수들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막스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조건 없는 헌신이야말로 그들이 일용하는 양식인가.
셋째, 한국과 비교하면 네덜란드의 전반적인 교육시스템은 좀 더 보편적인 평등권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육에 따른 금전적, 신분적 불평등을 방지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의대입학생들을 일정한 시험을 통과한 후보자들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깜짝 놀랐다. 전문교육이 개인적인 부와 특권의 밑천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묘책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입학도 어렵지 않고 대학별로 전체 순위가 있다기보다는 각 단과대학별로 다른 전통과 특징을 가질 뿐이다. 예를 들면, 한국(어)학과 일본(어)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네덜란드에서 라이덴 대학이 유일하다. 예술체육대 등 모든 학과를 총망라해서 특정대학만이 최우수대학으로 선망되는 한국 실정과는 아주 다르다.
내 수업에 등록한 수강생들도 상호 경쟁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과목을 느긋하게 배우겠다는 것이 기본태도이다. 학생참여와 토론을 장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발표하면 보너스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공지했는데 신청자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한국에서의 경우에는 거의 80% 이상의 학생들이 다투어 발표신청을 한다. 상대평가에 따른 성적시스템 때문에 다른 학생이 받는 보너스 점수는 내 점수를 빼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상 유례 없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국의 대부분 대학생들이 이런 '제로섬 게임'의 악몽에 시달리는 반면, (대학원 진학 계획이 없는) 많은 네덜란드 대학생들은 낙제를 면하는 65점 이상 성적에 만족한다고 한다. 나쁜 학점이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느냐고 되짚어 물어보니까, 너무 높은 학점 소유자는 학창시절에 사교활동이 부족했던 부적합한 직장후보생으로 찍힐 우려가 있다고 한다. ㅎㅎㅎ
오호라, 교수들은 '생기는 것 없이' 온갖 잡무와 업무에 시달리고 대학생들은 우등생 되기에 목숨 걸지 않고 평균적으로 빈둥거린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누가 이끌고 책임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처지 네 대학 네 나라 걱정이나 제대로 해라'이다. 다소 속물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네덜란드는 노벨상 수상자를 15명이나 배출한 세계 톱 10 안에 손꼽히는 인재국가이다.
도대체 무슨 특별한 교육철학과 교육정책의 비밀이 있단 말인가. 혹시 이곳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교실에서 은밀히 주고받는 것은 '지식(knowledge)'이 아니라 '질문(question)'이 아닐까. 결국 이상적인 선진대학은 네가 떨어져야 내가 붙는, 겁나는 취업사관학교가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현실과 세상만사에 대한 '의심(doubt)의 숙성공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당신 정말 유럽역사 전공자 맞아? 네덜란드에 대해서 쥐뿔도 확실하게 아는 게 없잖아! 그렇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모든 잘못과 어려움의 근원은 분수도 모르고 불평 많고 비판만 일삼는 나 같은 삼류 사이비 역사가(인문학 교수)들이다. 그러므로 되풀이 경고하건대, 허튼 생각 말고 "철자법 맞는 논문이나 열심히 써라 이 철밥통들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육영수씨는 중앙대 교수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