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아이들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학교, 유연하고 탄력적인 교육과정 운용으로 학교 밖 세상과 소통하는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만들 것입니다. 수업방법의 혁신을 통해 깨어있는 교실을 만들겠습니다. '배움의 공동체 원리', 즉 '활동 중심'이거나 '협동 중심', '표현 중심'의 교육활동으로 배우는 것이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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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형 대안학교'인 마산 태봉고등학교 여태전(48) 교장이 한 말이다. 태봉고는 경남 마산 진동에 있는데,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이 학교는 '공립 대안학교(특성화 고등학교)'인데 경남에서는 처음이고, 전국에서는 경기대명고에 이어 두 번째다. 체험 위주의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다. 학교 건물 건축 공사가 한창이고, 교사와 학생 모집에 들어갔다.
경남도교육청은 '공립 대안학교'가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 끝에 경남도교육위원회와 경남도의회의 심의과정을 거쳐 설립하기로 했던 것. 현재 전국적으로 '사립 대안학교'는 많은데, '공립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태봉고가 성공할 경우 다른 지역에도 '공립 대안학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태봉고에 교육계 안팎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교육청은 이 학교는 "전교생이 3년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입시 위주 교육의 경쟁주의 교육관에서 벗어나 협력과 상생의 교육관을 지향할 것"이며, "학생 한 명 한 명에 맞추는 개별화 맞춤식 교육과정 편성을 원칙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태전 교장은 교장공모 과정을 거쳐 선임되었다. 시인인 그는 양산 효암고와 진주 삼현여고 교사, 산청 간디학교 교감을 거쳤고, 교육학 박사다. 대안교육 현장을 짚은 저서 <간디학교의 행복찾기>(우리교육 간)를 펴내기도 했다.
'학교를 넘어선 학교' 만드는 준비에 여념이 있는 여태전 교장을 만나 그가 꿈꾸고 있는 '대안 교육'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모든 교육은 대안교육이고, 모든 학교는 대안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최근 여태전 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모든 학교는 대안교육으로 거듭나야"
- 대안교육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주 간단해요. 기존의 교육에 대해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대안교육이란 말은 두 가지 정도의 큰 갈래로 사용되고 있어요. 한 쪽은 근대교육의 한계를 넘어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보자는 교육운동의 측면으로 대안교육을 이야기 하고, 또 한 쪽은 기존의 교육시스템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교육정도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둘 다 일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평소 '대안교육은 그냥 새로운 교육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교육도 이내 퇴색되어 또 다른 새로운 교육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모든 교육은 변증법적으로 대안교육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모든 교육은 대안교육이다' '모든 학교는 대안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즐겨 씁니다."
- 그동안 논란도 있었지만, 공립학교에서 대안교육을 한다면 기존 공립학교 교육이 잘못됐다는 의미, 즉 '자기 부정'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분명히 그런 측면도 있겠지요. 지금까지 교육 관료들은 대안학교가 아니라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온 게 사실입니다. 그들은 기존의 학교를 바꾸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면서 새로운 학교를 여는 것도 격려하지 않았다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공립에서 웬 대안학교냐 하는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지요. 하지만 이제 이런 분위기도 급속도로 변화될 거라고 봅니다.
사실, 모든 대안은 자기부정의 산물입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거지요. 자기부정을 좀 달리 이야기하면 '성찰적 사유'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공립학교에서도 이젠 성찰적 사유가 일어난다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지난 10년 동안 사립 대안학교가 주도하여 한국 대안교육의 양적 확대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부터 공립 대안학교가 함께 동참하여 질적 향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봅니다."
- 일부에서는 대안학교가 '학원화' 내지 '귀족학교'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저도 비인가 사립 대안학교 중에서 그런 경향을 띠는 학교가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안학교는 '중산층만을 위한 학교'라고 비판받기도 하고, 오히려 대안학교에서도 경쟁과 선택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기조를 따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학교를 운영하는 자본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학교의 문화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립 대안학교들은 수백만 원 기탁금을 내야하니, 당연히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지요. 그나마 초창기에는 이런 구조에서도 삐걱대지 않고 학교가 잘 돌아갔는데, 갈수록 학부모들은 대안교육 '동지'에서 선택받은 교육의 '수요자'로 돌아섰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중산층 자녀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던 대안학교들이 이젠 공립에도 생기게 되니 가난한 아이들도 얼마든지 질 높은 대안교육을 받을 기회가 생기게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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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만남이다"
- 태봉고등학교는 한 마디로 말해서 어떤 학교인가요?
"'꿈, 땀, 사랑, 나눔'의 가치를 '서로 배우고 함께 나누는 행복한 학교'입니다."
- 교육목표를 두고 하신 말씀 같은 데, 평소의 교육관을 듣고 싶네요. 교육이란 무엇인가요?
"교육은 만남이지요. 책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면서 배움은 더 깊어지고 더 풍성해지는 거라고 봐요. 저는 우연한 만남이란 없다고 보는데, 그 만남은 기다림이 전제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모든 만남은 예비 되어있는 만남이지요. 다들 인연에 따라 만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결국 '교육은 만남과 기다림이다'고 말합니다."
- 그런데 그런 교육을 왜 하지요?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교육의 목적은 결국 한 아이를 자립시켜주는 데 있다고 봐요. 한 아이가 성장하여 부모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제 앞 가름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길러주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본래 목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태봉고등학교에서는 좀 더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무슨 일에 가치에 두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싶어요. 이때 고민을 좋은 말로 하면 꿈이지요. 세상은 꿈꾸는 사람의 것이라는 명제를 던지면서 끊임없이 꿈꾸는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일찍부터 스스로 삶의 목표나 꿈을 설정하게 하고, 그 목표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온 정성으로 땀 흘리게 하자는 겁니다. 머리나 가슴만으로는 꿈을 이룰 수 없지요. 땀과 눈물로써 만들어가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삶을 이야기 하고 싶고, 손발로써 꿈에 이르는 법을 함께 배우며 나누고 싶어요.
나아가 인간이 행복해지는 핵심 비결은 '사랑과 나눔'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을 기르고, 작고 소박한 것도 함께 나눌수록 행복해진다는 단순한 삶의 원리를 교육활동 전반에 구석구석 깔아놓을 것입니다. 그래서 태봉고등학교의 교훈이 뭐냐고 굳이 말해야 한다면, '꿈, 땀, 사랑, 나눔'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나 교사들이 이 말이나 문자에 집착하거나 갇히지 않게 해야지요. 민중은 삶을 원하지 이론이나 구호를 원하지 않는다잖아요. 그래서 저는 교훈이니 급훈이니 하는 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현의 말씀을 따라 '삶으로 배우고 사랑으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 '서로 배우고 함께 나누는 행복한 학교 만들기'의 전략 같은 게 있는가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설명 드릴게요. 하나는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만들면서 가능하다고 보고, 또 하나는 '사랑과 배움의 공동체' 형성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태봉고등학교의 교육 비전은 '학교를 넘어선 학교, 사랑과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자'로 잡았어요."
"배움이 즐겁다는 것을 실감하는 학교"
-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학교를 넘어선 학교'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배움은 학교 안에서, 교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지요. 그리고 교육은 교과서 진도에 맞춰 담당 교과 선생님만이 하는 게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배움터의 범주를 학교 밖으로까지 확대하여 학교 밖 세상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의 채널을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을 학교 안에만 가두어 두고 싶지 않아요. 가뜩이나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하는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자칫하면 학교가 또 하나의 감옥이나 수용소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끔찍한 일이지요.
기존의 그런 학교가 싫어서 대안학교를 만들었는데, 또 그런 교육과정을 짜놓고 아이들을 그런 교육과정 속에 묶어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예요. 그래서 저는 태봉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편성하여 그야말로 1:1 맞춤식 교육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배움이 좀 더 역동적이고 실제적으로 일어나서 '정말 배움이 즐겁다는 것을 실감하는 학교'를 꿈꾸는 것입니다. 학교 교사만이 학생을 가르친다는 발상은 근대적인 사고입니다. 지금은 후기근대사회인데, 당연히 배우고 가르치는 방식도 달라져야지요."
-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주장하는 어떤 근거나 사례가 있습니까?
"'학교를 넘어선 학교'에 대한 개념은 미국 공립 대안학교의 성공적인 사례로 널리 알려진 메트스쿨에서 빌린 말입니다. 이 학교는 '한 번에 한 아이씩' 지도한다는 교육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먼저 학생들의 관심사에 따라서 철저하게 개별화된 맞춤식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런 교육활동의 대표적인 사례가 인턴십을 통한 학습법입니다. 흔히 인턴십은 직업체험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말하는 인턴십은 그 이전 단계의 직업탐색까지를 포함합니다.
메트스쿨의 사례를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들이 추구했던 교육원리를 우리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려고 해요. 그들은 1주일에 2일을 온전히 인턴십 교육활동을 펼쳤는데, 저는 태봉고에서 1주일에 1, 2회씩 6시간 정도 지역사회의 멘토를 직접 만나서 자기의 관심 영역을 실제 사회 현장에서 배우게 하는 학습방법을 도입하려는 거지요. 가령, 춤이나 무용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그 분야의 전문가를 멘토로 만나고, 패션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그 분야의 멘토를 만나고, 태권도가 자신의 특기이자 장래 직업 희망이라면 시내의 좋은 태권도 도장으로 곧바로 안내하자는 겁니다. 또는 곤충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은 대학의 전공 교수님을 직접 만나서 자신의 관심영역을 넓히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강의도 들을 수 있게 길을 열어두자는 거지요. 변호사나 판사가 꿈이면 일찍부터 그런 분을 멘토로 만나서 꿈을 키우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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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아이"
- 흔히 대안학교, 그러면 소위 '문제아'나 '학교부적응아'가 모이는 곳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너무 이상론만 펼치는 것 아닌가요? 처음부터 학습 의욕이 전혀 없거나 무기력한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인턴십 학습이 가능할까요?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가장 이상적인 것이 결국은 상식이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태봉고에서 만날 아이들 중에는 흔히 말하는 대로 문제아나 학교부적응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런 아이들에게 더 차원 높은 이상을 말하고 꿈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희망의 인문학'으로 안내해야 하는 거지요. 평생 동안 이룰 수 없는 꿈 하나씩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어요.
그런데 우선, 문제아니, 부적응아니 하는 말부터 짚어봅시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란 어떤 아이들인가요? 또 '부적응'이란 말이 어떤 배경에서 쓰고 있지요? 흔히 학교 선생님들부터도 너무나 쉽게 한 아이를 두고 '사고뭉치들', '꼴통들', '부적응아들'이란 말을 쓰고 있어요.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 말은 편견과 오해에서 빚어진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문제라고 인식할 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문제라고 보지 않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드러난 현상이나 결과부터 보지 말고 동기와 과정부터 이해하려는 태도를 지닌다면 그렇게 쉽게 사람을 분별하고 예단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대부분의 문제 학생은 개인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거나 어른들이 벌써 빚어놓은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그러니 어찌 한 아이를 두고 '부적응아'라는 말을 쉽게 입에 담을 수 있겠어요. 저는 그냥 '새로운 질문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경우에도 쉽게 '문제아'라고 낙인찍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새로운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학교교육의 혁신을 바란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위와 같은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고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적용한다고 해도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자리를 먼저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학교는 이룰 수 없을 거라고 봐요. 교사나 학부모들이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고 분별하는 마음, 성적만으로 서열화하는 마음을 경계하고 성찰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사회 멘토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
- 인식개선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학습 의욕도 없고 정서 불안을 겪는 아이들이 많이 온다면, 과연 아이들이 이런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자는 게 대안교육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좀 더디고 느리게 가더라도 스스로 학습동기를 끌어낼 때까지 기다려 주면 된다고 봐요. 이런 전제 하에 우선 아이들이 무슨 일에 관심이 있는지 묻고 살피면서 학생, 학부모, 담임교사, 학교 내 멘토교사가 모여서 한 아이를 두고 '학습계획팀 회의'를 엽니다. 여기서 자기가 무엇을 주제로 어떤 과정과 절차를 통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서 공부할 것인가를 정하지요. 소위 말하는 '프로젝트 과제 선정'을 한 다음 구체적인 학습계획까지 스스로 세우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겁니다. 그런 다음 사회 멘토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아이들의 무기력증을 치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야말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빛을 맞추고 기다려주면 됩니다. 아이가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을 때는 '기다림과 사랑'이 최고의 처방전이지요. 그리고 적절한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아이에 맞는 적절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 그게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의 핵심이라고 봐요. 아이가 스스로 안에서 '탁, 탁'하고 깨어나려는 신호를 보낼 때를 놓치지 않고 교사도 밖에서 '톡, 톡'쳐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말하자면 졸탁동시(啐啄同時)의 원리에 따르는 것입니다.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활동을 펼칠 때는 이런 교육원리를 따르기 힘들지요. 그러나 태봉고는 1학급에 15명, 한 학년이 45명 정도에 전교생이 135명을 목표로 하는 작은 학교입니다. 학생 5명당 교사 1명이 배정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런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는 거지요. 한 순간도 아이들에게 눈길과 사랑을 놓치지 않아야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런데, 아이들이 직접 자기 관심 분야의 멘토를 어떻게 찾을지 궁금합니다. 좋은 방안이 있는가요?
"물론, 처음엔 아이들이 직접 멘토 선생님을 찾기 힘들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차적으로 다양한 직능분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미리 구성할 계획입니다. 적어도 학생 수의 10배 정도는 지역사회의 멘토 선생님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첫해는 450명, 이듬해는 900명, 완성학급이 되는 2012년에는 1500명 정도의 태봉고등학교 멘토 선생님을 구성할 계획이지요. 실질적으로 이 분들이 태봉고등학교의 교육 실험에 함께 동참하는 후원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돈으로 후원하는 게 아니라 실제 한 아이를 돌보고 살피는 일에 동참하는 교육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지역대학과 기업, 기관, 시민단체들과 협약 체결을 맺으면서 인턴십 학습이 실제 아이들의 진로지도와 연계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인턴십 과정을 철저하게 디지털 포트폴리오로 관리하게 하고, 그 결과물이 졸업논문이나 작품으로 나타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아이의 성장파일을 대학이나 기업체에 보여주면서 진학이나 취업으로 이끌어준다는 계획입니다. 앞으로 대학 진학은 입학사정관제도가 활성화될 것인데, 아마도 태봉고 학생들은 입학사정관제도를 활용하여 진학하는 게 유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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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공동체'를 위해
- 그렇다면 '배움의 공동체'는 어떻게 구현하려고 하는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바랍니다.
"큰 범주로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학교를 넘어선 학교'도 배움의 공동체 안에 포함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좁혀서 이야기하면 '배움의 공동체'는 하나의 수업혁신 방법이지요.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는 전제로 출발한 일본의 공교육 개혁 운동에서 나온 말입니다.
일본 도쿄대학교 사토 마나부 교수가 주창한 '배움의 공동체' 원리는 학교라는 장소를 사람들이 공동으로 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연대하는 공공적인 공간으로 봅니다. 배움의 공동체의 기본철학은 '모든 아이들의 배울 권리와 질 높은 배움을 보장'하는데 있어요. 교실수업을 활동적인 배움, 협동적인 배움, 표현적인 배움으로 이끌어내어 교실에서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교사들의 수업 사례를 중심으로 하는 교내연수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 연수를 통해서 '서로 배우는 관계를 통해서 배우자. 아이들의 배움이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멈추는가를 보자'는 것입니다.
일본은 1998년부터는 '공립학교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는 전제 하에 현재 일본 전역에서 2000개가 넘는 소학교와 1000개가 넘는 중학교가 '배움의 공동체' 실천에 도전하고 있어요. 저는 지난겨울에 실제 그 현장을 둘러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태봉고등학교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철학과 수업 원리를 받아들여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연수가 선결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학생과 교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도반"
- 앞으로 교사는 어떻게 모시고 선발할 계획인지요? 일부에서는 공립 대안학교가 성공하려면 교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어서는 안 되고, 대안교육에 남다른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태봉고가 바라는 교사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지만, 2010년에는 '우선 선발' 방식으로 10명 정도의 선생님을 모실 예정입니다. 2012년 9학급 완성학급이 되면 모두 27명 정도의 교사로 구성될 거고요. 이밖에도 전문상담교사를 비롯한 비교과 영역 교사도 최대한 모시고, 겸임교사나 방과후 활동 교사도 적극적으로 모실 계획입니다.
문제는 열정과 사랑을 가진 좋은 교사가 과연 대안학교에 자원하여 오겠느냐는 걱정거리가 있어요. 그렇다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고 특별한 승진 점수를 부여하면서까지 교사를 모신다면 대안학교 교사로서 진정성을 의심받겠지요. 그렇다고 좋은 선생님들을 모셔놓고 아무런 보상도 주지 않는다는 것도 공립학교 정서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는 것 같아요. 이 딜레마를 지혜롭게 푸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도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공립에서는 대안학교가 없어서 새로운 교육과 학교문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지,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새로운 교육현장에서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대안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교사들이 하나 둘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경남의 공립 중등학교 교사가 1만 명이 넘는데,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 중에서 0.3%인 30명 정도 못 찾겠습니까? 태봉고에 와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은 교육자로서의 보람과 긍지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가치를 서로 배우는 데 있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모여들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인센티브보다는 자기 삶의 변화가 더 소중하지요.
이런 선생님들을 찾아내고 싶어서 지금 태봉고 개설준비팀에서는 교사를 대상으로 대안교육에 대한 이해를 돕는 30시간의 직무연수를 기획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24일 개강하여 12월 19일까지 매월 2회, 모두 6회에 걸쳐 직무연수를 실시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초중고 사립 공립 구분 없이 모집을 했는데, 신청자가 50명이나 됩니다. 이 분들 중에서도 태봉고에 오실 수 있는 분들이 몇 분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학교는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고 봐요. 학교는 좋은 교사도 길러내는 곳입니다. 일단 공립 대안학교 교사로 모신 분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연수나 워크숍을 열어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키위해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리하여 태봉고등학교는 '가르치는 전문가보다는 배우는 전문가가 되자. 우리학교의 최고 자랑은 공부하는 교사다'는 비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사문화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들에게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교직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어느 때부터인가 학생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에게 있어서 학생은 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도반(道伴)이거나 친구입니다. 때로는 학생이 저의 스승이 되기도 하지요. 스승이면서 친구, 친구이면서 스승의 관계를 '사우(師友)'라고 했는데, 저와 만나는 우리 선생님들 모두가 진정한 '사우'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함께 공부 길을 열어갔으면 좋겠어요."
- 끝으로,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큰 틀에서 자율화, 다양화, 특성화라는 교육기조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것의 본래의 취지를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는 정책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가령, 전국 단위로 성취도평가를 실시하고 학력향상 중점학교를 선정하여 운영하는 것은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안교육 특성화학교를 학력향상 중점학교로 지정하는 것은 분명한 정책 오류이지요. 너무나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니 예산낭비도 심각한 것 같고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 성급한 개혁을 추진하다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서도 정부에서는 2012년까지 공립 대안학교를 25개까지 늘린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섭니다. 좀 더 세밀한 준비 단계를 가지고 진행했으며 합니다."